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평화를 주장하는 구호는 언제나 필승의 중요한 핵심어였다.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건국 초기부터 독립전쟁을 치러야 했고 지난 세기에만도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베트남 전쟁, 이라크와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 등 고비마다 국가의 사활적 운명을 좌우할 전쟁을 경험한 미국인들에게 평화를 갈망하고 지지하는 인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선거 때마다 평화에 대한 화두는 선거 분위기를 지배했으며 공화당과 민주당은 경제 위기를 제외하고는 평화를 대체할 다른 이슈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지난 세기 동안에만 해도 우드로 윌슨(W. Wilson, 1913~21) 대통령은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윌슨이 재선에 성공한 다음 해에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 Roosevelt, 1933~45) 대통령도 1940년에 똑같은 공약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속으로 깊이 끌려들어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린든 존슨(L. Johnson, 1963~69) 대통령도 평화주의자의 이미지로 공화당의 주전론에 반대하면서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곧바로 베트남 전쟁을 대규모 전쟁으로 바꿔놓았다. 이들 모두가 미국 정치에서 늘 갈등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전쟁보다는 평화를 주장하던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들이었다.
이들과는 달리 다른 무엇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당인 공화당 후보로 당선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 Eisenhower, 1953~61)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R. Nixon, 1969~74) 대통령, 그리고 조지 부시(G. Bush, 1989~93) 대통령은 20세기에 평화의 약속을 지켰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에 한국전쟁을 마무리 지었고, 중국과의 전쟁을 피했으며, 1956년에는 수에즈 위기를 종결시켰고, 1958년에는 중동전쟁의 위험을 막았다. 닉슨 대통령도 베트남전의 장기화를 종식시켰으며, 부시대통령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평화를 지켜냈다.
아무리 입으로는 평화를 강조한다고 해도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는 정책은 무의미하며 비현실적이라는 교훈을 미국 역사는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김대중(1998~2003)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 정착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당시 북한체제는 김정일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 붕괴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김대중의 평화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북한 정권의 기사회생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으로 나타났고 김정일 정권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북한 내부 최고위층으로 북한의 속내를 샅샅이 알고 있는 망명객 황장엽의 북한 붕괴를 위한 귀중한 조언은 무시되었다.
노무현(2003~08) 대통령의 한반도에서의 화해와 평화를 명분으로 한 집착도 임기 말까지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끝났다.
문재인(2017~22) 정부의 한층 심화된 굴욕적인 구애는 북한체제가 대한민국 전체를 가볍게 여기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었는데 자식뻘 나이의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입에 담기 힘든 비판은 국민들이 민망하게 여기는 수준을 넘어 분노를 느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은 물론 국익마저 내팽개친 자신의 정책 실패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쳤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정치 이해를 위한 중요한 개념인 ‘냉전(Cold War)’을 놓고 정치학자들은 ‘냉전은 폴란드에서 시작해서 한반도에서 완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1945년 1월에 개최된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이 동유럽 지역에서 ‘열강들의 세력권 배부’라는 문제를 놓고 출동하면서 사실상 냉전은 시작되었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주의 통제경제라는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 대립을 두고 양 진영 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 지역이 한반도였기 때문이다.
3년여 기간의 전쟁으로 한국인 100만 명, 미군 34,000명, 중국인 25만 명가량이 사망했으며,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많은 국가에서 온 젊은 군인들의 희생은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한국전쟁은 전형적인 20세기의 비극으로 도덕적 정당성이나 국민의 지지 없이 오로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은 방위에 대한 미국 의회와 국민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며 과거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군비 확장이 가속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지난 기간 남북한 간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내세우는 정부가 주장한 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현실이 어떤 상황으로 변해왔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한 역사의 증인들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을 탄식하게 하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 중에 대표적인 게 자신들의 정책실패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다는 표현이다. 이런 인식은 보수나 진보정권 모두를 가리지 않고 남발하는 게 유행이 되어 버렸다.
‘역사적 평가’라는 표현은 그렇게 남발해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을 두고 평가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당장 감당해야 할 현재의 책임을 역사에 숙제처럼 던지는 행위는 비겁한 일이다. 국민을 우매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 한 어떻게 그런 몰염치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전 세계 사람들이 우려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북한의 핵위협이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인 그들에게는 정녕 보이지 않는 것일까. 평화를 가장한 집단은 늘 사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분명한 교훈이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평생 상대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것 밖에는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는 ‘586 운동권 정치꾼’들을 외면하고 가장된 평화에 현혹되지 않는 국민들의 혜안만이 진실로 국가를 구하는 유일한 방책이 아닐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선거는 채 일 년도 남지 않았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