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의 공중보건지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발표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8년에서 10년가량을 더 일찍 사망하며, 그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시기가 좀 오래된 통계자료이니만큼 오늘날 그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통계에 따르면 가장 혈기 왕성하고 그나마 경제력도 일부 갖추게 되는 30대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사고를 당할 확률이 무려 15배나 높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알코올 중독, 흡연, 폐암, 자살, 당뇨 등 수명을 단축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습관이나 질병에서 여성보다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자폐증상이나 읽기 능력에서도 여성보다 3배 이상 뒤떨어진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모든 연령층에서 미국 남성은 여성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며 사망위험도 더 높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통계가 반드시 미국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평균 수명이 남자가 75세인데 반해 여자는 82세로 남녀 간 차이가 크고, 이웃한 일본도 남자가 79세로 여자들 평균 86세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남녀 간 평균 수명의 차이는 7년으로 나타났다. 매일매일 스트레스로 세상을 원망하는 남자들에게, 반복되는 여자의 잔소리를 지긋지긋해하는 남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소개한 통계는 후천적 요인들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생물학적으로 남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들보다 더 일찍 죽게 만들어져 있다. 하나님이 실수를 하신 것일까? 뱀의 꼬임에 빠져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여성인데 왜 하나님은 남자에게 더 불리한 일을 하셨을까.
남성과 여성의 평균수명 차이는 태어날 때 가장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여자 갓난아기는 남자 갓난아기 보다 평균적으로 7년은 더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하면서 여자아기는 남자아기보다 더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저 고물거리는 미약한 존재지만 여자 아기의 눈에 옆에 누워있는 사내아기는 그저 나약해 보이는 존재로 보일 뿐이다.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X와 Y염색체는 남녀 간 수명의 차이를 잘 설명해 준다. 여자들은 한 쌍의 X염색체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 염색체는 모든 유전인자들 중에서 ‘안정’과 ‘평화’를 대변한다. 반면에 남성다움을 특징짓는 Y염색체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특징을 갖고 있음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 놀라운 연구결과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얻어낸 것으로 혈우병과 색맹 같은 질병이 왜 남자들에게만 나타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여자들은 하나의 X염색체에서 결함이 발생하면 정상적인 다른 X염색체가 즉각 보완적인 기능을 한다. 따라서 질병은 곧 치유된다. 반면에 남자들은 하나뿐인 X염색체에 결함이 발생하면 보완적인 기능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X염색체 결함과 밀접한 질병을 앓게 된다. 그 결과 삶의 모든 사다리 -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 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온갖 질병에 의한 사망률이 더 높은 것이다.
슬프게 비유하자면 남자들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고달픈 삶을 살다가 여자보다 더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러니 남자들이 인생의 허무함을 탓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옛적 어머니들이 모이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는데 오늘날 남자들이야말로 이 노래를 떼창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남자들은 살면서 분노, 짜증, 폭력적 행동,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심 등으로 온갖 사고에 노출된다. 심지어는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에서도 위험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TV에서 종종 방영하는 기행적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 대다수가 남자들이다. 그들은 뻗을 때까지 술 마시기, 속도 경쟁하는 자동차 경주, 음주 후 바닷가에서 수영하기, 자전거 타고 경사 높은 산악 오르내리기, 눈 덮인 산을 스키 타고 활강하기, 스카이다이빙, 절벽에서 바닷가로 점핑하기, 불필요한 소동에 참여하기 등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런 행위들은 종종 사고와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남자들의 몸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남자 고유의 DNA, 즉 Y염색체 덕분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패트릭 게디스(Patrick Geddes)는 인간의 몸에서 난자는 수동적이고 보수적이며 냉담하고 안정적인 반면에, 정자는 적극적이고 활력이 넘치고 성급하고 열정적인 특징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정자와 남자가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러나 남자가 여성보다 일찍 죽는 게 단지 DNA나 생물학적 요인 때문만 일까.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실 남자들을 둘러싼 환경은 출생과 더불어 아담의 후손들에게 불리하게 형성되어 있다. 남자들은 아잇적에는 ‘사내는 울지 않는 법‘이라며 스트레스와 불만해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하며 성장했다. 도대체 누가 사내아이는 울어선 안 된다고 가르쳤을까. 혹시 아이들 교육이 여성의 몫이었던 시절, 심술궂은 유모가 우연히 한말은 아니었을까.
조금 성장해서는 감성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심신의 균형이 일치하지 않은 가운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우리 세대만 해도 통일의 그날을 상상하며 신의주까지 내달리기 위해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속을 오르내리며 겨울철 눈 속을 발이 짓무르도록 행군했다.
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땅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다음 날 아침에도 끄떡없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동계 생존 훈련에서 자신을 이겨내야 했고,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한 여름에 온갖 코스를 어떡케 든 통과해서 이겨내야 하는 유격훈련 등 다양하고 극한 훈련의 과정을 군대에서 경험했다. 그 과정 과정을 상상해 보라.
사회에 진출해서도 어렵고 힘든 일들은 대개 남자들의 몫이 된다. 대부분 직장에서 고달프고, 힘들고, 야근하고, 꾸중 듣고, 휴일에 근무하고, 어려운 일들은 한마디 상의 없이 거뜬하게 남자들 앞으로 배달된다. 결혼 후에는 동굴 밖으로 나가 굴 안에 있는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무한경쟁을 해야 했다. 바깥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한 사냥이 가을철 마당에 떨어진 ‘과일 줍기’만큼 간단한 일은 단연코 아니었을 것이다.
여자들은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 또한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과거 의료여건이 충분치 않던 시절에 출산은 여성들의 생명과도 바꾸게 되는 험난한 일이었다. 양육의 어려움은 남자들이 직접 경험해 봐야 그 어려움을 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일은 정말이지 오랜 기간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바르게 아이들을 양육하는 작업은 보통 한 여성의 희생을 온전히 요구한다. 그렇다고 양육에 대한 각고의 노력이 모두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련의 어려움들이 목숨 걸고 동굴 밖으로 나가 사냥터로 향하는 수컷의 비장함만 할까. 오랫동안 수컷들은 이런 작업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이런 것이 남성의 DNA에 녹아 있다.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이나 스트레스를 오늘날 후천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비난받는 행위들로 해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혹시 여성들이 남자들과 똑같은 환경 속에 놓여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후천적 스트레스를 해결했을까.
남자들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여성들과 다르다. 아담의 아들들은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방식을 낯설어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저 멀리 남부유럽의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어보는 일이 여성들에게 유행처럼 번지며 로망이 된 적이 있었다.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여자로서 평생 해보지 않은 힘들고 고된 산책의 여정을 통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무언가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얻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자신의 인생 버킷리스트에서 그 추억을 꺼내 앞에 놓고 행복하고 낭만적인 회고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남자들은 왜 우물쭈물 거리며 이런 아름다운 작업에 동참하지 않는 것일까. 단언컨대 남자들에게는 그 끔찍했던 군대에서의 행군의 기억이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서 여전히 스멀스멀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불균형한 염색체를 온전한 것으로 바꾸는 연구는 실현 가능하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한 이상 남자들도 스스로 해답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가 한상복은 여성이 남성보다 장수하는 특별한 이유로 “여성은 일상의 패배와 좌절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특별한 수단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패배를 무력화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역이용해 다음 승부에 미리 쐐기를 박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여자들이라서 여성들 간에 승부의 세계나 정글 속 싸움이 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패배에 온전히 굴하지 않고 패배감이나 부러운 감정을 한마디 말로 무력화시키는 기술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뛰어나다.
또한 여자들은 주변 환경과 감정 파악 능력이 뛰어난 까닭에 환경 적응력이 남자보다 월등하다. 여자들이 잔뜩 앉아있는 넓은 공간 가운데 빈자리 하나가 남아 있을 때 남자들은 감히 청중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여성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학창 시절 남학생들이 타고 있는 버스 맨 뒤의 좌석 한가운데 하얀 교복 상의를 입고 새침한 표정으로 홀로 앉아있던 여학생에 대한 기억을 추억처럼 갖고 있는 중장년 남성들이 많다.
이처럼 여자들은 매일 살아가는 환경에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더 잘 대처하는데, 이런 행동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적응력을 높여 준다. 남자들도 오래 살고 싶으면 여성들의 이런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배워야 한다.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남자가 여자만큼 오래 살기는 어렵겠지만,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주변 환경에서 적응력을 높이고 감정적 해소를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우는 남자 전성시대다. 눈물 좀 흘리면 어떤가. 또한 비록 복잡한 여건이라 할지라도 단순하게 적응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과음이나 무모한 행동 등 무리한 위험인자에 노출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내부에 스트레스나 분노를 쌓아두지 말아야 한다. 여행이나 산책, 가벼운 운동으로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며 남과의 접촉을 통해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남자들은 장수의 비결에 대해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교사인 아내가 늘 가까이에 있지 않은가. 감정적으로도 일상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친구와 마주 앉아 오순도순 즐겁게 대화하며 다소 과격한 역할은 여성들과 공유하며 안정되고 평화로운 여행길 같은 삶을 남자들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남자들도 정말이지 오래 살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