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엔테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하여 이스라엘인 승객을 인질로 삼았을 때 모사드는 인질을 단순히 ‘민간인’이 아니라 자국의 자산으로 생각했다. 이들의 구출을 위해 이스라엘은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인질 전원을 구출하는 대담한 작전을 감행하였다. 이를 통해 모사드와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국민과 요원은 어디에 있든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반드시 데려온다”는 신념을 국제적으로 과시하였다.
러시아도 KGB나 GRU요원이 서방에서 발각되면 결코 홀로 버려두지 않고 국제 협상이나 대규모 포로 교환을 해서라도 타국에 억류된 자국 요원들을 교환해 본국으로 송환한다. KGB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국가가 끝까지 지켜준다”는 믿음을 통해 요원들의 충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우리 요원은 결코 적지에 버려두지 않는다”는 강한 국가 메시지를 보여줌으로써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면서 서방세계 정보기관보다 훨씬 더 강하게 강조되던 문화였다.
내곡동의 국가정보원 청사 입구의 한쪽에는 19개의 별이 새겨진 호국탑이 서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헌신했던 요원들을 재임 중에 정리해 놓은 것이다. 대부분 국정원 요원들조차 그 별의 주인공들 모두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누구인지, 왜 그리고 어떤 연유로 보국탑의 별이 되었는지.
그중에 하나의 별이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96년 10월 1일 밤 9시가 채 못 된 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 요원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살해수법이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그와 그의 가족이 거주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루스카야 거리의 아파트에 북한 공작원들이 잠복하고 있다가 퇴근하는 그를 칼과 도끼, 그리고 독침을 사용해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다.
그는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가격당하고, 옆구리를 예리한 물체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싸늘해진 시신을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던 그의 아내가 먼저 발견했다. 러시아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범인들은 이미 도주했다. 그는 러시아어에 능통한 러시아 전문가로 부임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열정적으로 북한의 달러 위조와 마약 밀매를 추적하는 한편, 북한 벌목공들의 탈북 사건에도 관여하는 등 비밀 첩보업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그의 이름은 안기부 해외공작관 최덕근이다.
북한은 왜 그를 살해했을까? 1990년대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은 북한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1991년 소련제국의 갑작스러운 해체로 러시아는 경제회생을 위해 출구를 찾고 있었고, 그에 따라 1961년 북한과 체결한 과거의 혈맹관계를 청산하고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방점을 둔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정부의 북방정책에 부응하며 한국 정보기관이 벌이고 있던 구소련 지역에 대한 정보활동 강화에 북한은 우려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북한 인민군 정찰국 소속 특수요원 26명이 탄 북한 잠수함이 강릉에 침투했다가 좌초된 사건으로 우리 군의 대규모 수색 작전 끝에 전원이 몰살했다. 당시 남북관계는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초긴장 상태에 있었는데 북한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연일 방송을 통해 “백배 천배 보복할 것”을 공언하고 있었다. 한 고위 정보전문가는 최덕근 영사가 살해된 것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한 북한의 보복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안기부는 특별 수사팀을 꾸려 현지에 급파했다. 그의 육신은 물론 낯선 곳에서 떠돌 영혼마저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다. 우선 현지에서 사인규명을 위한 부검이 실시됐다. 파견된 우리 측 수사요원이 부검에 참관했다. 우리 수사팀은 러시아 측에 북한 공작원이 사용하는 독극물 샘플을 전달했다. 그 결과 우리가 넘겨준 독극물의 흔적이 혈액에서 검출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 요원들은 귀국 직전까지 아파트 주변을 철저히 조사하고 목격자들을 찾고 증언을 채취하기 위해 매진했다. 그의 시신은 국내로 봉환되어 삼성의료원에 안치되었다. 시신을 다시 부검했다. 북한이 사용해 온 네오스티그민 독극물이 검출되었다.
그는 대부분 스파이들의 죽음처럼 마지막 순간에 한마디의 말도 남기지 못했다. 오로지 조국을 위해 소리 없이 한 줌의 재로 변해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의 곁을 떠났다. 깜깜한 어둠 속에 그가 쓰러져 있던 블라디보스토크의 황량했던 아파트 계단 바닥도 냉기가 서려있었다. 싸늘한 바람으로 거리의 온도는 이미 10도 아래로 내려간 상태였다. 그는 머리가 부서지고 독침이 온몸에 퍼지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영구차는 그가 청춘을 바쳐 헌신했던 내곡동 청사를 마지막으로 천천히 순회했고 선후배 동료들은 눈물을 쏟으며 그를 떠나보냈다. 시신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관속에는 태극기와 안기부 시계, 그리고 보국훈장을 같이 넣었다. 시계는 그가 안기부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그의 영혼이 국가 최고정보 조직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임을 상징하는 의미로 곁에 남았다. 그는 지금도 국정원 정문 우측에 서 있는 보국탑에 조국을 수호하는 하나의 빛나는 별로 남아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우리의 가족인 최덕근 영사를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이 비극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조국의 역사와 함께) 길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우리의 가족을 해쳤는지 끝까지 추적해서 범인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평양에 들어갈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북한의 정보 파일을 뒤져서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서 누가 범인인가를 추적하는 일을 계속해 주기를 당부드립니다.”
그를 지휘했던 스파이 조직의 수장이 고인을 추모하며 남긴 말이다. 국정원은 이젠 안다. 북한의 어떤 조직이 이 테러를 주도했고, 누가 지휘했으며, 누가 실제로 범행했는지를 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항구는 우리 바다 동해와 바로 연결된다. 따라서 그곳을 떠난 바닷물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동해로 밀려온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의 기억을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 조국의 바닷가로 흘려보내며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가족과 조국의 안위를 기원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벌써 29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그가 고통 속에 생과 사를 넘나들던 순간에 했을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차마 눈을 감지 못하던 생각으로부터도 부디 자유로워졌기를 바란다. 늙은 부모의 슬픈 얼굴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스파이는 죽어서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하지 못한다. 다만 남은 사람들이 왜 그가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를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우리가 직면해 있는 암담한 현실을 생각하다가 조국을 사랑했던 죄밖에 없던 인물의 참혹한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기억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 답을 찾는 일에 살아있는 자들이 전력을 다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