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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노조는 어떻게 정치화되었나?

by Hello


20세기 중엽의 영국은 산업혁명 이래 구축된 노동운동의 본고장이자, 복지국가의 실험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는 “국가(정부), 기업(자본), 노조(노동)”의 3자가 협력하는 ‘코퍼러티즘(corporatism)’ 체제를 통해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경제 재건과 사회 안정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영국 산업의 생산성 정체, 노후화된 공업 구조, 경쟁력 저하가 나타나면서 노사 간 갈등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협력 구도는 점차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경제성장률의 둔화, 산업경쟁력의 약화, 물가상승과 임금억제 정책은 노동계의 불만을 자극했는데, 특히 보수당과 노동당 정부 모두가 물가 안정에 주력하면서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정책을 결정한 것을 계기로 노조는 단순한 임금투쟁을 넘어 정치적 저항의 형태로 발전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의 노조는 경제 단체를 넘어 정치 세력화된 사회운동체로 변모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1960~1970년대 영국 노조의 정치화 과정을 사회경제적 배경, 제도적 요인, 그리고 정치적 결과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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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복지국가 체제와 노조의 제도적 기반


1945년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 1945.7.26.~1951.10.26. 기간 총리 재임)의 노동당 정부는 복지국가 건설을 핵심 과제로 삼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단순한 교섭 단체가 아니라 국가 경제운영의 협의 주체로 제도화되었다. 이런 목표를 위해 구성된 국가경제위원회(NEDC)와 임금·물가정책 협의체 등은 노조가 거시경제 정책에 일정한 발언권을 가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참여는 역설적으로 노조의 정치적 기대를 높이고, 정부의 임금통제 정책에 대한 반발의 기반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국가와의 협조를 통해 제도권으로 편입된 노조가 점차 정부 정책의 직접적 비판자로 전환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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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 현장주의의 부상과 정치적 자각


1960년대 영국의 산업현장은 ‘Shop Steward Movement’의 성장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노조 중앙의 통제보다는 각 공장 단위의 현장 대표(Shop Steward)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건, 임금, 작업시간을 교섭하며 막강한 실질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들은 종종 전국노조 본부의 승인 없이 현장 직접 행동(industrial action)을 통해 파업을 단행했고, 그 결과 산업별·지역별 파업이 연쇄적으로 또 전국적으로 쉽게 확산되었다.


현장 중심의 직접 행동은 노동운동의 자율성과 전투성을 강화시키며 노조가 중앙정치와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는데, 노조 활동은 임금정책, 인플레이션, 정부 개입 등의 문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면서 경제 전반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특히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임금상승을 억제하자 노조는 이를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국가적 통제로 규정하며 정치적 대응에 나섰다. 이로써 노조의 활동은 ‘임금 인상’이라는 경제적 목표를 넘어 ‘노동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정치적 의제를 포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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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1970년 : 노동당 정부와의 제도적 결합


1964년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 1964.10.16.~1970.6.19, 1974.3.4.~1976.4.5. 두 차례 총리 역임)이 이끄는 노동당 정부의 출범은 노조에게는 도약을 위한 큰 기회가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노조의 정치화’를 제도적으로 가속화시켰다. 노동당은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운동에서 비롯된 정당이었는데 1960년대 중반 무렵에도 당 재정의 절반 이상을 노조의 정치자금에 의존하면서 국회의원 상당수를 노조가 추천하는 후보로 결정하였다. 노조는 당원, 의회후보 추천, 정책협의 등을 통해 노동당의 핵심 기반을 형성했고, 노동당 정부 역시 이를 사회경제정책의 주요 파트너로 인정하며 수용하는 입장을 택했다.


그러나 윌슨 정부가 추진한 ‘임금 및 물가정책(Prices and Incomes Policy)’은 이러한 관계를 균열시켰다. 노조는 정부의 임금규제를 ‘사회적 배신’으로 간주하고, 정부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파업을 주도했다. 결국 노조는 노동당의 정치적 후원 세력이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에서 압력단체로 변모했고, 경제정책 논의는 곧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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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 국가권력과의 정면충돌


1970년 에드워드 히스(Edward Heath, 1970.6.19.~1974.3.4. 기간 총리 재임)의 보수당 정부가 등장하면서 노조의 정치화는 절정에 달했다. 히스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노조의 확장된 권한을 억제하기 위해 ‘산업관계법(Industrial Relations Act, 1971)’을 제정했다. 이 법은 파업권 제한, 노조 등록의 의무화, 불법파업에 대한 제재조항 등을 담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주요 산업 노조들은 이를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적 탄압’으로 규정하며 전국적인 총파업과 대규모 정치투쟁으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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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철도, 전력, 석탄, 항만 등 기간산업 부문에서는 이미 노조가 중심이 되어 국가 경제 운영의 핵심을 장악했고, 이를 계기로 노조는 경제적 힘을 정치적 무기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가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념을 제기하면서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인 노조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대표적인 강성 노조인 전국 광부노조(National Union of Mineworkers, NUM)의 파업은 전력난과 경제 혼란을 초래했고,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 사건은 노조가 단순한 산업 이해집단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행위자’ 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노조와의 대립에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히스 정부의 몰락은 이러한 정치적 대결의 연장선상에서 사실상 정부가 패배한 것으로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로부터 지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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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1979년 : 사회계약과 ‘불만의 겨울’


히스 보수당 정권의 몰락 이후 1974년에 노동당이 재집권하면서 노조는 정부와 ‘사회계약(Social Contract)’이라는 새로운 협력체계를 구축하면서 정부와의 협력을 선언했다. 이는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복지정책 확대와 노동자 권익 강화를 약속받는 형태였다. 이 협약은 초기에는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으나, 1970년대 후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를 특징으로 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심화로 임금 억제정책이 다시 강화되자 노조 내부에서 불만이 폭발했다. 노조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던 노동당 해럴드 윌슨 정부는 임기 2년 만에 사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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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제임스 캘러헌(James Callaghan, 1976.4.5.~1979.5.4 기간 총리 재임)이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다시 임금 억제정책을 주도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다른 정책적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공공부문 노조를 중심으로 1978~79년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 동안 전국적 파업이 이어졌는데, 쓰레기 미수거, 병원, 장례식장과 교통의 마비 등 국가 기능이 사실상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노조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보수나 진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과 사회체제를 흔들어 댔다.


대중은 노조의 행동을 정부를 마비시키는 정치세력의 횡포로 인식했고, ‘노조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분노했다. 이런 여론의 확산은 1979년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보수당 정부가 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국의 노조는 정치적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렇듯 전후 오랜 기간 진행된 노조의 파업과 불법 행동은 단순히 노조의 쇠퇴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그 후유증은 ‘영국병(British Disease)’이라는 미증유 사건의 원인이 되었고, 과거 제국을 운영하던 영국은 IMF 금융지원이라는 굴욕적인 사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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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1960~1970년대 영국 노조의 정치화는 경제적 불안정과 제도적 관계의 변질 속에서 발생한 구조적 현상이었다. 전후 복지국가의 협조적 산업관계는 생산성 정체와 임금억제정책으로 인해 균열되었고, 노조는 이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경제적 단체를 넘어 정치적 압력집단으로 진화하였다. 노동당과의 제도적 결합은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촉진했지만, 동시에 정권과의 갈등을 심화시켜 결국 상호신뢰를 붕괴시켰다.


결국 1970년대 후반, 영국의 강성 노조들은 국가정책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으나, 무분별한 정치투쟁은 대중의 반발을 초래하며 여론이 등을 돌리는 계기를 자초하였고 결국 정치적 권력의 소멸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영국 사회가 대처의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으로 전환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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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험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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