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1994년에 펴낸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 1914-1991)는 깨알 같은 글씨로 인쇄된 600페이지가 넘는 저서다. 그는 이 책의 출간에 앞서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혁명, 산업의 발전,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를 수많은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저서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자본의 시대』(The Age of Capital, 1848-1875)와 『제국의 시대』(The Age of Empire, 1875-1914)를 발간하여 세계적인 역사학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그가 관심을 갖고 다루었던 시대는 오늘을 살고 있는 인류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대를 꿰뚫고 있는 역사학자로서 그의 안목과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그의 연작 저작물의 마지막에 해당할 지난 세기를 놓고 홉스봄이 왜 20세기 대부분을 ‘극단의 시대’로 지칭했는지에 대해서 역사학자들 간에 이견은 없다. 역사가들의 설명에 굳이 의존하지 않더라도 지난 세기는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에 종식되고,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이래 1939~1945년 기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격렬한 세력 다툼의 시대였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이 종식된
이후에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 전 세계를 무대로 치열한 이념대결을 벌였다. 이후 1989년에 독일의 분단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마침내 1991년 12월 냉전체제의 종식을 알리는 소련제국의 해체가 선언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극단적인 대립으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지는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를 거시적 관점에서 관찰하면서 이념대립을 이야기하지만, 국가 단위에서는 정당 간, 정파 간 갈등과 충돌은 물론, 경제의 불균형과 사회 내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 간 갈등, 그리고 성별로 인한 차별과 갈등은 물론 종교적으로 대립하는 종교와 종파 간 갈등과 대립은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에서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닌 게 되었다. 게다가 대공황, 석유파동, 금융위기 등 시민들이 더 실감 나게 체감하면서 충격으로 다가온 경제문제는 앞서 언급한 갈등과 대립, 분쟁, 그리고 전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무시할 수 없는 극단적 대립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런 극단적 대립의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몇몇 정치적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 모두가 위대한 업적을 기릴만한 인물이었거나 훌륭한 정치지도자로서 만족할만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니다. 1994년에 발간한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 초판본 저서의 표지는 군복을 입은 히틀러로 분장한 찰리 채플린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구를 힘들게 떠받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극단의 시대 당시 국제사회에서 존재하던 나름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의 역할이 바로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 독재자 스탈린, 유럽의 독재자 히틀러, 이탈리아의 전체주의자 무솔리니, 스페인 내전의 프랑코 총통, 아시아의 전범 히로히토 일왕, 6·25 전쟁의 주역 김일성,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 유고 연방의 티토, 중국 공산혁명의 주역 모택동, 베트남 통일의 주역 호찌민, 이란 혁명의 주역 아야툴라 호메이니, 러시아 연방 해체의 주역 고르바초프. 이들은 인류를 극단의 세기로 불리게 만든 시대를 이끌던 한쪽 세력의 주역들이었다.
이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의 가치는 인간의 삶 대부분 영역에 걸친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 세기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자들을 타파하는 공산주의 혁명을 부르짖었고, 노동자들은 자본가를 위협하는 노동자 혁명을 주장했으며, 특정 종교의 신봉자들은 다른 신의 존재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신의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척결하려고 노력했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공식적으로는 170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100만에서 2,0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는데 혁명을 이끈 세력들은 그 후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 세력에 의해 제거된 시민은 동물을 대하는 것보다 더 잔악한 행위의 피해자가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김일성이라는 독재자의 야욕에 의해 2백만 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3년여에 걸친 확대된 전쟁으로 인해 20개 이상의 국가에서 온 젊은 군인들이 낯선 땅의 전쟁터에서 안타깝게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도 냉전 기간 동안 국제사회는 다양한 지역에서 충돌이 빈번했는데 다른 국가와의 갈등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국가 내부에서 벌어진 갈등이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했다. 미국과 베트남 전쟁으로 촉발된 ‘68 운동’과 같이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는 세력이 부상하는가 하면, 강력한 노동자들과의 충돌로 인해 국가체제가 위기에 처하거나 전복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최근 대부분 국가가 경제발전에 주력하는 가운데 노동자들과 기업 간 갈등은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구조가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피해 갈 수 없는 사안이 되었다. 특히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그들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지원 세력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전 세계 곳곳에서 좌파 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벌어진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 노동자들을 수단으로 하는 정치행태가 순수하게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산업현장에서의 복리를 증진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일찍이 산업화가 진행되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 있는 서유럽 지역에서 먼저 발생했다.
이러한 경향은 아직 미성숙한 경제구조가 있는 국가들의 노동 현장에 그대로 전이되어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대부분 국가들에서 마치 유행처럼 강력한 노조와의 마찰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들은 임금 인상, 전임노조의 지위 향상, 노동자의 근로 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앞세운다는 만만한 이슈로 협상 테이블에 나온 상대를 압박한다. 문제는 그런 가운데서도 고임금과는 달리 저효율의 비정상적인 결과가 산업현장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복지체계의 요구는 협상의 상대를 협박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세기 후반기에 들어서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경제가 쇠퇴하고 침체기로 접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국가는 홉스봄의 모국이자 인류 최초로 산업혁명이 발생한 영국이었다. 영국이 의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경제발전을 통해 현대 인류문명의 가치인 법제도, 문화, 교육, 사회체제, 복지체계의 모범을 정착시킨 국가라는 견해에는 큰 이견이 없다. 실제로 영국은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이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국가 발전의 전형이기도 했다.
그런 영국 사회도 강력한 노조가 촉발한 사회적 갈등의 파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선진국 중에서는 드물게 금융위기로 인해 IMF의 지침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결과의 중심에 자신들만의 이익에 충실한 노조와 이들을 선동하고 지지했던 정치 세력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노조 상당수는 이제 전 세계 언론에서 주목하는 불법과 비상식적인 행태가 보편화된 집단이 되었다. 과거 좌파 정부의 등장 때마다 이들 세력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허용해 준 탓이다. 국가를 위하는 것보다 자신들 집단의 이익을 더 우선시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이나 독일의 사민당의 지지기반인 노조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집단이 되어버렸다.
노조의 불법 관행이 영국처럼 제국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노조는 한술 더 떠서 분단의 위협 속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적 행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의 주장과 행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국민이 깨달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참고할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이 2차 대전의 혼란을 극복하고 냉전이 종식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국가의 발전과 도약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뛰어난 많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독일의 콘래드 아데나워 (Konrad Adenauer), 프랑스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그리고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바로 그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전후 패전국 독일을 이끈 아데나워에 대한 평가는 다른 승전국의 위대한 지도자들 못지않았다. 아데나워는 두 차례 전쟁으로 패전국 시민이라는 좌절감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 속에서 국가 부흥을 이끈 지도자였다. 그는 독일의 도덕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열망 속에서 험난한 국가재건 과정의 맨 앞에서 자기희생과 모범을 보였으며, 그의 임기 동안 독일은 경제 성장을 거듭하였다. 아데나워는 절망 속에 있는 국민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덕과 양식을 가진 독일인으로의 헌신의 가치와 저력을 일깨운 지도자였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은 전쟁 기간 영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하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전쟁 기간 사실상 패전국이었던 프랑스를 다시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위대한 문화와 예술이 부흥하는 강한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국익 중심의 성장이 그 목표의 바탕에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 다음으로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그의 이름을 올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드골은 프랑스 국민들의 위대함을 일깨워준 지도자였다.
마거릿 대처가 고질적인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노조와 싸우면서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벌인 노력은 영국 정치사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평가받을 만하다. 영국은 1976년 우리에게도 익숙한 IMF의 금융지원을 받는 상황을 경험한다. 여기에는 노동당 집권 기간 정부의 지원을 업고 무소불위 세력으로 성장한 강성 노조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과격한 파업 투쟁을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리는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대처는 물러서지 않았고에 따라 노조의 위협을 분쇄했고, 결국 국가발전의 장애물이 제거되면서 영국 경제는 자연스럽게 유럽의 경쟁국들을 추월하며 성장하게 된다. 대처는 다시 영광스러운 제국의 시민으로서 영국민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어 준 인물이다.
오늘 내부적으로는 갈등과 혼란이 지속되고 외부적으로는 위기와 위협이 고조되는 불안정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담대한 용기와 탁월한 지략을 갖춘 뛰어난 지도자의 등장은 국가의 안위나 미래의 번영을 위해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에 우리 국민들에게 쓸데없는 허영과 자만심으로 주변 국가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태를 지양하고 자긍심과 헌신을 결집하여 우리나라가 재도약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지혜와 용기를 갖춘 지도자가 하루빨리 등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