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부호이자 귀족이던 설립자 토마스 할로웨이(Thomas Holloway,1800–1883) 경(卿)의 대규모 기부로 런던대학 로얄 할로웨이 컬리지(Royal Holloway College) 건물의 일부가 된 빅토리아 양식의 파운더스 빌딩(Founder’s Building)은 역사화, 종교화, 풍경화, 초상화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는 19세기 영국 화가의 유화와 대형 캔버스 작품이 소장된 갤러리로 유명하다. 미술사가들은 이 컬렉션을 두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미적 취향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집합체”라고 평가하며 “당시 공식 미술의 전형이랄 수 있는 사실적 묘사와 극적 구성을 강조”한 회화의 경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는 견해를 거리낌 없이 피력한다.
설립자는 학생들에게 학문 연구뿐 아니라 “최고 수준의 예술을 직접 접할 기회”를 주고자 자신이 특별히 수집해 놓은 빅토리아 시대 회화 컬렉션을 1층 갤러리에 조성했다. 여기에는 산업혁명 시대 런던 패딩턴역의 군중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빅토리아 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The Railway Station》을 그린 William Powell Frith, 동물화뿐 아니라 북극 탐험대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한계를 주제로 다룬 《Man Proposes, God Disposes》의 화가 Sir Edwin Landseer,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The Sirens and Ulysses》의 화가 William Etty 등이 다른 귀중한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작품이 있었다.
학기 중에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의 독서와 리포트 작성, 토론 준비 등으로 학업에 지친 학생들은 잠시 자리를 떠나 설립자의 바람처럼 정적이 감도는 갤러리에 들러 말없이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위로를 받곤 했다. 그림들은 근대 영국 사회의 도시와 전원 풍경을 통해 학생들에게 조용히 메시지를 던지거나 역사와 신화의 한 장면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곤 했다. 피곤하면 눈이 빨개지거나 눈가 아래가 파래지는 특징을 보이던 학생들은 그림들과 말없는 대화를 마친 후 교내 카페에서 통밀로 만든 비스킷과 티 한잔씩을 들고 다시 도서관의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책장을 넘기곤 했다. 건물의 잔디밭 중앙에 세워져 있는 설립자 부부의 동상은 오랜 시간 학생들의 그런 모습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18세기 런던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짙은 안개가 거리를 감싸고 늘 햇볕이 아쉬운 어둡고 습습한 길가 골목 한쪽에 작은 이발소 하나가 있었다. 이발소 주인은 손님들의 수염과 가발을 손질해 주는 평범한 인물인 윌리엄 터너. 그의 이발소 창문에는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끄는 물건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풍경 스케치 몇 장이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유명 화가가 아니라 그의 어린 아들 조지프 말로드 터너였다.
손님이 들어오면 아버지는 늘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아들은 유명한 화가가 될 겁니다.”
그는 아들의 그림을 창문에 걸어두었다가 손님들에게 푼돈인 몇 실링에 팔기도 했다. 이발소는 깊고 맑은 눈빛을 가진 어린 조지프 터너에게 첫 번째 화랑(gallery)이었으며 작은 창문은 훗날 세계 미술사를 바꿀 화가의 첫 전시장이 되었다. 어머니의 정신질환으로 외삼촌 집에서 성장한 불우한 환경 탓에 어린 시절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는 매일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안개 자욱한 템스 강 주변의 잔잔한 풍경을 그렸다.
1789년 이웃나라인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발발하고 그 여파가 유럽 대륙의 다른 국가들에게 때로는 큰 풍랑으로 혹은 잔잔하면서도 긴 파장으로 번져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그 무렵 런던에서는 영국 최고의 미술 기관인 왕립미술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는 당대 화가들에게 최고의 무대였다. 영국 전역에서 명성이 있거나 혹은 무명의 수많은 화가들이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갈망했다. 이곳에 15세 소년의 그림이 걸렸다. 작품의 제목은 《람베스 대주교 궁전의 풍경 (View of the Archbishop's Palace, Lambeth)》. 이 그림은 전시회 당해 연도인 1789년경에 완성된 수채화 풍경 드로잉 작품으로 런던 템스강의 건너편에서 본 람베스 궁전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전시회에 참석한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당대의 걸출한 예술인들이 15세 소년이 그린 작품을 보고 놀랐다. 언론들도 천재적 재능을 가진 10대 소년의 등장에 주목했다. 소년의 성장은 놀라운 일로 가득했다. 그는 14세의 나이인 1789년에 Royal Academy Schools에 입학하였고, 15세에는 작품이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출품되는가 하면, 1799년 24세에는 준회원, 그리고 27세인 1802년에는 마침내 정회원으로 선정되었다. 런던의 가난한 이발사 아들이 타고난 재능에 각고의 노력을 더한 끝에 최고 권위를 가진 기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터너는 이제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젊은 화가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갈망하던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귀족들과 부유한 상공인들이 그의 그림을 수집하기 위해 줄을 섰다.
터너는 자연을 직접 보기 위해 영국 곳곳을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자신이 본 풍경만 그린다는 신념이 바탕에 있었다. 웨일스의 산, 잉글랜드 중부 요크셔 계곡, 스코틀랜드의 거친 바다 등 방문하는 지역에서 그는 모든 풍경을 스케치했다. 그의 그림에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빛과 공기, 안개와 날씨가 살아 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섬세한 것을 초월해 화폭에 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는 특히 폭풍과 빛을 그리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이는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안목과 그의 예술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터너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그는 평생 자신을 돌봐주고 자랑스러워하던 이발사인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당시나 지금 기준으로도 영국인의 정서상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유명해진 아들의 단순한 동거인이 아닌 유명 화가의 든든한 조수로 다시 한번 아들의 곁을 지켰다. 그는 아들의 작업을 위해 기꺼이 캔버스 준비, 붓과 물감 갈기, 그림 관리 작업을 하면서 아들의 화실을 지키고 돕는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웠던 자신의 성장과정이나 특별할 게 없는 가족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감추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터너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평생 아버지와 함께 살았으며 아버지도 어릴 적부터 자랑스러워하던 아들 곁에서 작업을 돕는 일을 조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랑하던 아버지가 죽었을 때 터너가 오랜 기간을 큰 슬픔에 빠져있었다고 미술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1796년에 첫 유화 《Fishermen at Sea》로 주목받은 그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전통에서 벗어나 시적이고 상상적인 접근으로 나아갔다. 1807년 판화 시리즈 Liber Studiorum을 통해 다양한 풍경 양식을 체계화했고, 1819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 이후 색채는 더욱 순수하고 투명해졌다. 1820~30년대에는 빛과 대기의 효과를 극적으로 탐구했으며, 이는 《Snow Storm: Hannibal Crossing the Alps, 1812》과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 The Fighting Temeraire, 1839》는 BBC 설문조사에서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 1위로 선정되었으며, 영국의 20파운드 지폐 모델로도 선정된 작품이다. 테메레르는 1805년에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트라팔가 해전에 참전하여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인 군함으로 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수명을 다한 이 배가 예인선에 이끌려 템스 강에 있는 조선소로 가는 모습을 본 터너가 퇴역 전함을 기리기 위하여 남긴 작품이 바로 《전함 테메레르》이다.
다른 한편으로 퇴역함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전함의 숙명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주도하는 새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의미와 함께 60대의 나이에 접어든 터너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실제로 터너는 분신과도 같은 이 작품을 매우 아껴 비싼 가격에도 팔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국가에 기증했다고 한다. 터너는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로, 빛과 색채의 실험을 통해 풍경화의 위상을 역사화에 맞먹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빛의 화가(Painter of Light)”로 불리며, 그의 후기 작품은 인상주의의 선구로도 평가받는다.
터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코벤트 가든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문호 찰스 디킨스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작품에서 그 풍경을 여실히 드러낸다. 작품 《Oliver Twist, 1838》에서는 당시 런던 술집의 소란스러움과 길거리 공연 같은 빈민가의 하층민 문화와 거리 상인의 일상이, 그리고 《David Copperfield, 1850》에서는 행상인과 거리 노동자, 상인의 외침, 거리의 마차 바퀴 소리 따위의 길거리 문화와 상점 풍경 등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터너는 이런 환경 속에서 짙은 안개로 뒤덮인 런던 하늘과 템즈 강의 잔잔한 빛, 그리고 마차가 지나가는 거리를 기억하며 훗날 빛과 안개, 대기의 변화를 평생 자신의 작품 표현 기반으로 설정했다.
터너는 고독한 성격으로 인해 생애 말년에는 런던 첼시에서 동료나 제자도 없이 은둔하며 지냈으며, 사후 유작 약 3만 점이 유언에 따라 국가에 기증되어 “터너 유산(Turner Bequest)”으로 남았다. 그의 작품은 빛의 묘사와 해석, 그리고 회화적 실험으로 영국 낭만주의 시대는 물론 현대 추상과 인상주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미술사가들은 평가한다. 터너는 영국 풍경화의 또 다른 거장인 John Constable, 작가 Charles Dickens, 자연 시인 William Wordsworth, 그리고 바다 건너 유럽 대륙의 중심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이끈 Ludwig van Beethoven 등과 함께 낭만주의 시대를 이끌었던 예술가로 오늘날까지 존경받고 있다.
(터너의 원작을 감상할 수 있는 한국 전시가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17일부터 금년 5월 25일까지 개최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Turner: In Light and Shade》로 터너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인데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휘트워스 미술관의 협력과 주한 영국대사관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에서는 터너를 대표하는 유화와 수채화 작품이 빠져 아쉽기는 하지만 휘트워스 미술관이 소장한 터너의 명작 수채화 몇 점과 유화 원화, 그리고 판화 시리즈 등 86점을 만나볼 수 있다. 따뜻한 햇볕이 듬뿍 내리쬐고 아름다운 봄꽃이 만발한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역사와 문화, 예술을 동시에 감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