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서로 다른 개성을 존중하는 개인과 집단이 공존하는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은 결국은 갈등 끝에 분열하거나 충돌이 일상적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영국 사회는 그런 예측보다는 나와는 다른 상대방의 주장과 가치를 존중하면서 서로 배우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것이 영국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유학시절인 오래전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과 함께 영국에서 기숙형 대안학교로 혁신 교육을 이끌고 있던 ‘서머힐 스쿨(Summerhill School)’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견학 후에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참석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는 학생들은 교실을 떠나 학교 주변을 맴돌고 있었고 교사들은 굳이 그들을 설득해서 학업에 전념하라고 권유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일과는 물론 심지어 수업과목도 자신들이 결정했고 결정한 대로 학교생활을 만끽하는 듯했다. 엄격한 학교생활에 익숙했던 한국 선생님들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반면에 이튼 컬리지나 해로우 스쿨 같은 사립학교들은 한국보다 더 엄격한 규율과 높은 강도의 학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규율을 따르고 규칙을 준수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교육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한 극단의 모습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영국은 ‘신사의 나라’로 불리지만 런던시내 중심에 위치한 교통과 상업,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 ‘피카딜리 서커스 (Piccadilly Circus)’주변은 제멋대로 개성을 뽐내고 싶은 젊은 펑크족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유명했다. 이들은 요란한 복장과 머리 모양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관광객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주며 푼돈을 얻어 지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엄격한 궁중 생활로 명성이 있는 왕실 거주지인 버킹엄 궁전이 있고, 또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사당과 행정부를 이끌며 국가를 통치하는 총리 관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부조화스러운 풍경에 영국 시민들이 관대한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문학에서도 셰익스피어가 등장해서 활약한 시기는 대영제국의 번영을 통해 영국의 위상이 전 지구촌에 걸쳐 한껏 고조되던 시기로 많은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통해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제국의 시민으로 자부심이 높았다. 그러나 제국의 번성과 산업 혁명으로 국가가 발전하고 런던이 세계적인 도시로 평가되는 한편에 그 이면에서 더 냉혹해진 사회의 현실을 관찰하고 제국 시민들이 간과하고 있던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비참한 삶의 고통을 작가 찰스 디킨스는 놓치지 않았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낸 그의 작품을 두고 영국 시민 누구도 디킨스를 비난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허스트는 영국의 현대예술가로 잉글랜드 서남부의 해안도시 브리스톨에서 출생하였으며,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컬리지를 졸업한 후 동문들과 함께 결성한 YBA(Young British Artists)의 프리즈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인물이다. 만 26세인 1991년 첫 전시회에서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에 넣어 전시한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선보여 미술계는 물론 사회에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기로 사치 갤러리를 소유한 광고 재벌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와 갤러리 화이트 큐브를 소유한 제이 조플링의 후원을 받아 미술 시장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급성장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유리 진열장에 피가 흥건한 소의 머리와 파리, 구더기, 설탕, 살충기가 들어있는 작품으로 죽음의 본질을 날것 그대로 꺼내 전시장 한복판에 놓아둔 《A thousand years, 천년》(1990)와 유리판을 씌운 철골조에 포름알데히드를 채우고 뱀상어 한 마리를 그 안에 박제해 둔 구성을 취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영국 현대미술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작품 중 하나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 그리고 중세시대의 신원 미상의 유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작품으로 아무리 찬란한 외피를 뒤집어써도 결국 인간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For the Love of God,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 등이 있다.
그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로열 아카데미 등에서도 기존의 전통 미술계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논란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파격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2005년과 2008년에는 미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까지 오르기도 했으며, 마흔 살의 나이에는 1억 파운드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의 이력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로는 허스트가 1995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가 선정한 터너상의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터너상(Turner Prize)은 영국 현대 미술의 대표 기관인 테이트 브리튼이 1984년에 제정한 상으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풍경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터너 상은 비록 상금액은 많지 않지만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으로 한 해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나 미술활동을 보여준 50세 미만의 영국 미술가에게 수여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상이다. 이 상은 미술가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미술적 시도를 격려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영국 미술계에서 윌리엄 터너와 데미안 허스트는 아무리 조합을 해보려고 해도 작품이나 화풍 등에서 유사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러나 테이트 갤러리는 허스트에게 터너상을 수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테이트 브리튼은 1995년에 허스트에게 상을 수여하면서 다음과 같이 수상 이유를 언급하였다.
첫째, 수상에 핵심적으로 작용한 작품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Mother and Child Divided》(1993)로 소와 송아지를 반으로 절단해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보존한 구조 사이를 관람객들이 걸으며 내부를 직접 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허스트는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생명, 죽음, 육체에 대해 직접적이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가운데 기존 회화 중심의 전통적 미술에서 벗어난 개념 미술적 접근에 대한 시도를 추구했다.
둘째, 인간의 죽음, 존재, 유한성이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해 동물의 사체, 의학적 보존 기술 같은 비전통적 소재를 활용하는 시각적 충격에 철학적 메시지를 결합하면서 “예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현대미술의 표현 방식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은, 허스트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로 심사위원회는 그가 1990년대 영국 미술을 이끈 YBA 그룹의 중심인물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는 가운데 전통적 미술 규범에 도전하면서 영국 현대미술의 방향을 바꾼 상징적 작가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통해 지켜왔던 그의 신념에 대한 평가가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수상 이유를 놓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작가 허스트에 대한 평가 부분인데 이를 통해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 사회가 지탱해 가는 동력의 원천이랄 수 있는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과 공존의식이다. 허스트가 젊은 예술가들(YBA) 그룹을 이끌며 대학 시절을 보내던 시기는 1979년부터 시작된 영국 보수당의 집권시기로 당시 나라를 이끌던 지도자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M. Thatcher) 총리였다. 그녀의 장기 집권은 경제파탄으로 야기된 ‘영국병(British disease)’에서 허덕이던 영국을 회복시키고 경제 발전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경제는 다시 성장하였고 영국은 유럽의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확립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강경한 치안 정책, 청년 실업 급증, 복지 지출 감소, 인두세 도입, 무상급식 폐지 등 강압적 분위기에서 드러난 강력한 통치로 시민들, 특히 데미안 허스트 또래의 청년세대는 질식할 것 같은 사회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이런 가운데 등록금과 생필품 인상 같이 젊은 학생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정부와 젊은 세대의 충돌이 불가피한 문제였다. 이런 모순된 결과가 공존하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기존 미술계의 기득권 세력이 강조하는 가치와 전통을 공유해야 한다는 무거운 관념은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은 무언의 압박이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관념을 벗어나 창조적 발상과 작업에 익숙한 허스트와 젊은 예술가들의 등장은 당시 상황을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과 서로 다름을 단순히 비난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영국인은 자기의 주장을 행동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으로 표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 면에서 당시 영국 미술계 현실에서 이단아쯤으로 평가받을 허스트라는 인물의 출현과 그런 그의 개성과 재능을 주목하고 성장의 발판을 만들어 준 찰스 사치와 제이 조플링, 그리고 그를 터너상 수상자로 결정한 테이트 갤러리의 심사위원들은 뛰어난 안목을 가진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흔히 영국을 보수적인 나라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지만, 사실 영국처럼 창조적 사고를 바탕으로 시대 조류를 이끌며 늘 새롭게 등장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들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실용적이며 개방적이다. 그래서 터너상은 가장 영국적인 상이라 할 수 있다. 터너상이 추구하는 바는 ‘영국 현대예술의 다양성(diversity)’이다. 미술에 조예가 깊던 아님 그냥 초심자이든 다양한 예술의 즐거움을 맛보라는 것이 그들의 뜻일 것이다. 허스트는 어쩌면 이런 취지에 가장 적합한 미술계의 이단아이자 적임자가 아닐까.
데미안 허스트 전시회 -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Nothing is true but everything is possibl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2026.3.20~6.28)에서 개최 중인 허스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 40년의 궤적을 관찰하고 눈으로 감상하는 것에 더해 그의 작품이 이 시대에 던지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