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람들은 신문을 즐겨 읽는다. 아침 출근길에는 전철이나 기차 안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영국 신문은 흔히 일용직 노동자 계층이 읽는 신문과 중산층 이상이 읽는 신문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를 타블로이드판 신문이라고 하고 후자는 보통 우리가 읽는 판형으로 크라운판과 스탠더드 판이라고 말한다.
타블로이드 형 신문은 무가지 《Metro》를 제외하면 《The Sun》, 《Daily Mirror》가 대표적인데 글씨를 축약하고 은어 등이 많은 데다가 3면에는 늘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반나체의 여인 사진이 들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식자층이 읽는 신문으로는 보수성향의 《Daily Telegraph》와 진보성향의 《The Guardian》,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중도성향의 《The Times》와 《The Independent》 등으로 구분한다.
이들 신문 독자의 성향을 특징짓는 말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Daily Telegraph》를,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The Guardian》을 주로 읽는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The Sun》의 열렬한 독자나 《Daily Telegraph》의 과묵한 독자는 상대방이 무슨 신문을 읽던, 혹은 무슨 생각을 하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사회의 구성원이자 국가가 필요할 때 기꺼이 나서 각자의 충실한 역할을 담당할 개별 주체이기 때문이다.
영국 시민들은 산책하기 좋은 넓은 잔디가 있고 숲이 가까운 교외에서 사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가까운 역에 차를 주차해두고 대부분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시내로 출근한다.
그런 가운데 혹시 몸이 아픈 여성들이 기차 좌석에 앉아 《Daily Telegraph》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몸이 불편해서 그런데 자리를 좀 양보해줄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면 자리를 양보받을 승산이 크다고 한다. 그들을 대개 신사라고 부르는데, 국가에 대한 헌신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는 그들의 의식과 태도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다.
보수성향의 《Daily Telegraph》나 중도보수 성향의 《The Times》지 독자들은 영국의 전통적 가치, 신사로서의 양식과 태도, 가정과 사회 내에서 중시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와 덕목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영국이라는 자신의 조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사회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한 《The Guardian》 독자들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나는 신문을 읽는 조금 유별난 습성이 있다. 정부가 보수성향일 때는 진보성향의 한겨레신문을 구독한다. 가끔씩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도 구해 읽곤 했다. 반대로 진보성향의 정부 집권기에는 조선일보를 정기 구독한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좋아하는 칼럼도 종종 출력해서 읽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정부가 지향하는 바를 비판적 시각에서 관찰하고 싶기 때문이다.
보수성향의 정부든 진보성향의 정부든 집권당이 되면 정부에 우호적인 매체들의 긍정적인 보도 기사가 차고 넘친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정부 비판 성향의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한 학자라고 해도 혼자의 노력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언론사의 취재 능력과 분석 시스템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 집단이 작업해 발간하는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학술지의 도움을 얻는 것이 효과적이다.
정보를 수집한 후에는 나름대로의 분석틀을 마련해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 기초해 세상이나 국가가 운영되는 모습을 20년 넘게 가르쳐 왔다.
이런 이유로 인해 종종 오해를 받곤 했다. 과거 보수성향 집권기에 내 주변에서는 나를 좌빨, 심지어 종북좌파 교수라고 대놓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신문도 오해에 일조를 했다.
게다가 정치사상을 강의하다 보니 이념의 스펙트럼을 펼쳐놓고 보수의 에드먼드 버크(E. Burke)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Hayek), 존 밀(J. Mill)과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부자를, 좌파를 대표하는 마르크스(K. Marx)와 레닌(V. Lenin),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를 강의했으니 한쪽 면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은 명분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처럼 진보성향의 정부 시기에 나는 조선일보를 정기 구독 중이다. 일부 젊은이들이 그런 나를 속으로 ‘수구꼴통’이라고 비판할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이런 비판을 별로 괘념치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사실에 기초해 평가를 하는 법이니 그들은 조금도 잘못한 게 없다. 그저 나인 사람은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좌빨도 됐다가 꼴통도 되고 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 말이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나의 생각과 다름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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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변명하지 않고 의연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악착같이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바람직한 사회는 새의 날갯짓처럼 좌우가 같이 움직여 미래를 보고 나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신문 3면을 몰래 열고 반라 여인의 풍만한 몸매를 감상하는 것도 아닌데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시며 신문 하나도 제대로 읽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가.
사진출처 ;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