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서 태어나서 사대문 안팎을 오가며 지금까지 살았다.
아마 군 생활을 했던 양평이 가장 오래 살았던 외지가 아닌가 싶다.
같은 부대에서 4계절이 변하는 풍경을 3년 가까이 경험했다. 그때 지루하던 군 생활을 늘 제 자랑을 하고 싶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변하는 풍경이 위로해 주었던 모양이다.
종종 꿈꾸던 ‘시골에서 살아보기’를 실천해 보았다.
TV에 나오는 ‘자연인‘ 수준은 못되지만 산허리 수려하고 물 좋은 시골에서 해 뜨면 일어나고 뉘엿뉘엿 해가 지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을 해보고 싶었던 거다.
서울에서 약 28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남쪽 지방의 한적한 마을이었다.
가깝고 먼 산들로 둘러싸여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조용한 마을. 집 뒤로는 작은 산들이 있고 앞에는 아담한 저수지가 있어 아침마다 물안개 피는 풍경이 정겨웠다.
상큼하고 쾌적한 공기, 맑고 깨끗한 개울물, 차분하고 조용한 풍경. 정신 쏟을 대상이 없는 잔잔함으로 생각은 풍경만큼 고요해지고, 누렇게 여물어 가는 펼쳐진 논을 바라보면 눈이 시원해졌다.
한낮 햇빛은 눈부시도록 밝았으며 주변은 적막했다.
처음 며칠은 고요가 낯설었다.
밤이 되면 사방이 깜깜하다.
밤마다 아무것도 없는데 들리는 정체모를 소리를 경험해 보았다. 나뭇가지가 저절로 부러지는 소리인지, 산짐승이 둔덕을 지나가는 소리인지, 바람이 불어 벽에 부딪히는 소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시골에 내려가 깜깜한 밤에 논밭 길을 걸으며 구름에 가린 희미한 그믐달을 바라보면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쓸쓸한 분위기로 묘사된 글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실감했다.
깜깜한 밤은 무서웠다.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 wifi 연결이 안 되고, TV가 없고, 사방 20리 안에 구멍가게마저 없고, 식당도 없으며, 당연히 카페도 없다.
하루 세끼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작업이 간단치 않음을 깨달았다. 아주 기본적인 식품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며 식사 후에는 늘 안도했다.
눈을 뜨면 낯선 것들과의 생경함이 펼쳐진다.
서울보다 더 독하고 더 따갑고 더 날렵한 벌레와 곤충들, 밤사이 탱탱한 거미줄을 완성하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의 큰 눈을 처음 보았다.
주인에게도 내게도 늘 짖어대는 개들. 표현이 다를 텐데 꼬리를 흔들며 사납게 짖어대는 그들의 속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잘 지내보자꾸나!’ 하며 늘 따뜻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좁은 산책길에서는 종종 뱀을 만났다. 발을 들어 바닥을 쿵쿵 울리면 작은 뱀은 빠르게 몸을 움직여 도망갔지만 제법 큰 놈은 머리를 들고 나를 노려본다.
‘저놈은 나를 삼킬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머리가 나쁜가?’
머리 나쁜 뱀과의 싸움은 승산이 없으므로 늘 피해 돌아갔다.
이름 모를 나무로 가득한 산,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리며 익숙해진 언덕, 옛적 마을이 수몰돼 있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저수지, 누렇게 벼가 익어가던 논, 늘 무심한 동네 사람들. 얌전히 앉아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촌로들.
모두 잔잔한 추억이 되었다.
다음에 시골에 갈 때는 ‘땅꾼처럼 걷기’와 ‘개장수처럼 보이기’를 미리 훈련하고 갈 작정이다.
줄 호박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 끓이는 요리법도. 그러면 시골생활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