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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Nov 15. 2021

창의적 사고로 국제정치 이해하기(1)


1. 국제정치 이해하기


‘국제정치’란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현상을 말하며 국제정치학이란 관련 분야의 제반 이론과 현상 등을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탈냉전기의 국제질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특징을 띄고 있으므로 정치적 요인에만 초점을 두고 파악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 그런 까닭에 더 정확하게는 국가들 사이에 경제, 무역, 금융, 사회, 문화, 심지어 종교 문제까지 아우르면서 국가 이외의 행위자들, 즉 국제기구, NGO는 물론 개인이 행위주체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국제관계라는 학문도 등장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어 보자.

여기에 젊은 부부가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양가 부모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부부로서는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그러나 젊은 커플은 너무 사랑하는 까닭에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으므로 마침내 그들은 양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둘만이 참석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 살아간다. 부모의 인정도 받지 못한 부부가 된 것이지만 그들은 결혼식장에서 부모에게 보란 듯이 잘 살겠다며 굳은 결심을 한다.


이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들이 아직은 젊고 용기나 의지도 가상한 까닭이다. 그들도 머지않아 자녀들을 낳고 양육의 의무를 감당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노력하면서 평생을 주변의 사람들과 경쟁하며 성공하는 삶을 위해 애를 쓸 것임에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대로 살게 될까? 

되돌아보면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은 것처럼 그들도 현실은 자신들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조언과 적절한 지원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국제정치 연구는 이들 젊은 커플의 과거와 현재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국가의 안보 상황을 예측하는데 국제정치 이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게 조금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국제정치는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은 말할 것도 없고 행위 주체의 개별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인 까닭에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개인의 일상과 매우 비슷한데 개인 간의 관계를 확대해서 개별 국가를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펴보면 거의 판박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가끔 상황이 불리하면 친한 친구와 연대해서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왕따 놓기도 하고 뜻이 통하는 친구들끼리만 놀러 가는 등의 행동을 한다. 또 친한 친구가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빌려주던 아니면 아예 그냥 주던 금전적 지원도 하게 된다. 가끔 약자를 상대로 돈이나 권력으로 윽박지르거나 겁주는 행위도 일상에서 흔히 목격하게 되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가진 사람이나 힘이 있는 사람의 ‘갑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국제정치는 누가, 어떤 관점에서, 어떤 시기에 관찰하느냐에 따라 개별 국가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마치 사람의 기분이 아침과 저녁, 월요일과 주말이 돌아오는 금요일, 평일과 월급날에 다른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듯이 국가 간에는 “영원한 친구나 적이 없다”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지도자의 성향이나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우방이 적이 되거나 적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한다. 과거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사담 후세인이 초기에 미국의 가장 훌륭한 친구였다 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과 긴밀한 관계인 듯 보였던 것도 국제정치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과 베트남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나 2차 대전 중 사생결단의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미국과 일본 간 동맹을 보면 국제정치 현실이 실감이 난다.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에 따라 주변과 친소관계를 맺듯이 국가는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에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관계의 변화가 얼마든지 가능한 게 국제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2. 국제정치와 한반도 이슈


우리는 오랜 기간 북한을 적으로 보는 정부와 협력의 파트너로 인식하는 정부의 입장을 공히 경험한 바 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의 판단은 무의미하므로 중요한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한 입장을 가진 정부가 주변국의 국가전략을 이해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했느냐가 국민의 입장에서 중요하다.


그래야 정부가 국익 추구를 위해 잘하고 있느냐 아니면 무능한 짓을 했는가로 선거를 통해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분석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 붕괴 시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4개 주변국의 입장과 한국의 전략에 대한 주제는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정치 과목에서 가장 흔히 다루는 이슈라 할 수 있다. 우리 같은 분단국의 통일은 이해당사자 간 동의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 지구 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 입장에서는 과거 베트남이나 예멘, 혹은 독일 통일의 사례를 당연히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 독일 통일 사례는 앞선 두 나라가 무력을 수단으로 통일을 완성한 것과 달리 평화적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이 간단치 않다. 따라서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에의 시사점’이라는 주제도 한국정치학회나 한국국제정치학회를 포함해 대부분 사회과학분야 연구학회에서 거의 매년 다루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우리는 독일 통일이 자연스럽게 성취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면에는 복잡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독일 통일은 분단된 동서독 주민과 정부의 합의 하에 예고 없이 갑자기 이루어졌다. 1989년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인 1990년에는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1991년에 소련 제국의 갑작스러운 해체로 냉전체제가 갑자기 붕괴된 것을 미리 예측한 전문가는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거의 없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 갑작스럽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동서독 분단의 이해당사자인 미국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의 입장이 모두 달랐다는 점이다.

사실 이들의 양해 없이는 독일 통일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헬무트 콜(Helmut Kohl)이 이끄는 당시 서독 정부는 이해당사국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소련에는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였고, 미국과 영국에는 가장 신뢰할만한 동맹국이 유럽 대륙의 한가운데 있다는 점을, 프랑스에는 유럽 통합을 주도하는 협력의 파트너로 얌전히 존재할 것을 약속하고 각국이 제시하는 통일의 조건을 이행함으로써 4개국의 양해를 얻어 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 강국은 《4+2안》을 제안했는데 콜 총리는 역으로 《2+4》를 지속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독일 통일이 4 강국이 주도하고 동서독 두 나라가 따라가는 형식이 아니라 동서독이 통일을 주도하고 주변 4 강국이 양해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공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은 통일의 주역이 주변국인지 아니면 독일 국민들 스스로인지를 기억하게 하는 역사의 기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참여정부 초기에 우리 정부는 외교의 핵심으로 ‘동북아 중심 국가론’을 선언했다가 주변국들의 조소로 슬며시 발을 뺀 적이 있다. 이는 비유하자면 유럽에서 마치 벨기에나 네덜란드가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중심 역할을 해보겠다고 선언한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이러한 외교정책이 국내외 비판에 직면하자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톤을 조금 내렸다. 우리 스스로 외교정책의 불완전함을 자인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당시 참여정부의 외교 핵심 브레인으로 대표적인 학자 몇 명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공부한 한 명을 빼곤 전부 국내에서 국제정치 공부를 한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사고가 한반도 정치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오래전에 일본 동경대학교를 방문했다가 국제정치 커리큘럼을 본 적이 있는데 국제정치나 국제관계의 중심에 자국인 일본을 중심에 놓고 교육하는 방식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런 방식에 의존하게 되면 인식의 한계가 일본 열도로 제한되게 되어서 객관적인 분석이 어렵다. 북한 주민들이 자기들 체제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것으로 배우거나 일본의 정치인들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모호한 주장을 하는 것도 그런 교육의 영향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이 조금 길어 두 부분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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