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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Jan 24. 2022

사이비 언론과 무능한 정치 구분하기


어수선한 나라가 되었다. 

역동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어릴 적 배웠던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은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정부기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사기죄’가 절도죄를 제치고 우리나라 범죄 중 1등이 된 게 벌써 오래전이란다. 사람들은 점점 사악해지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가 되었다. 금세 드러날 거짓말이 상거래에서,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선단체에서, 그리고 종교기관을 상대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심지어 법을 다루는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등쳐먹는 시민단체도 등장했다.


사회가 황폐화되었고 거친 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나라가 어쩌다 이리되었을까.

교육현장은 이미 황폐화되었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조차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강사를 더 신뢰한다.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고어(古語)가 되었다.


이런 사달이 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나마 양심을 걸고 올바른 소식을 전해주던 언론이 황색언론이 되어 무능한 정치집단과 결합한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만 이럴까.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사회는 비슷하지만 아무리 정치가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언론이 양심을 갖고 공정한 보도를 한다면 시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나 정신적 황폐는 덜할 듯하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경우를 이야기해 보자.

처음 영국 정치 공부를 시작할 때 지도교수는 몇 권의 필독서와 함께 영국이라는 사회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이해하기에 적당한 신문과 잡지, 그리고 유명한 칼럼니스트의 칼럼을 꾸준히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그중의 하나가 영국에서 발간하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였는데 그 습관은 귀국해서도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The Economist》는 어떤 잡지일까. 

잡지는 단순히 경제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랜 기간 읽어본 사람의 경험에서 말하자면 우선 잡지는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우리나라 신문이나 잡지와 많이 다르다). 


철저한 취재와 정확한 분석을 통해 명확한 사실만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영국 정치와 국제정치, 국제경제와 금융, 과학기술, 지역 연구, 환경 등의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주간지가 없다. 이념의 편향도 어느 편에서 관찰하던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웬만큼 지각이 있는 사람은 잡지를 읽으면서 깊이 있는 뉴스는 물론 관심분야 지식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라는 잡지는 어떤 배경으로 이런 전통을 가진 가치 있는 전문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역시 사람이었다. 


객관성과 균형감을 갖춘 정보제공을 통해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깨인 국민들을 확산시켜 사회를 발전시키겠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 그가 잡지 발간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월터 바제트(Walter Bagehot)

성씨(姓氏)를 나타내는 Bagehot은 발음하는 것도 쉽지 않아 영국식 영어를 풀어쓰면 ‘바제트’ 정도가 무난하겠다. 

바제트는 1826년 잉글랜드 랭포트(Langport)에서 출생하여 런던대학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법률가 대신 문필가의 길을 선택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언론인이자 평론가인 그를 빅토리아 시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G. M. Young은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격찬했다. 역사학 분야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From Dawn to Decadence》의 저자인 프랑스 태생의 미국 역사학자 자크 바전(Jacques Barzun)은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의 저서에서 특별히 바제트에 대해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어 번역판은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 서양 문화사 500년》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음). 


바전은 바제트의 장점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꼽았다. 세상의 뉴스를 분석하고 평론하는 사람이니 당연한 자질이 되겠지만 당시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었나 보다. 바제트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나 의견 충돌이 벌어졌을 때 양쪽의 호전성에는 하나같이 이유가 있다는 점을 늘 감안하려고 애쓰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 안의 감정까지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바제트는 20대부터 문필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곧 큰 주목을 받았다. 세간에 그의 능력을 각인시킨 글은 1851년 그의 나이 25세에 영국 신문 ≪인콰이어러≫의 파리 특파원으로서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보도한 <1851년 프랑스 쿠데타에 관한 편지>다. 여기서 바제트는 프랑스에서 전개된 정치혼란 사태에 대해 프랑스 국민성을 주요 인자로 채택하고 역사적 흐름에 기반을 둔 독창적 설명과 재기 넘친 문체를 선보이며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바제트는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건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창간한 윌슨(J. Wilson)의 딸 엘리자베스 윌슨과 결혼하고 초기 편집장이던 장인의 뒤를 이어 1861년부터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본격적인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취임 이후 한 주일 동안 벌어졌던 정치와 경제 현안을 총평하는 글을 17년 동안 거르지 않고 썼는데 이 기간 변함없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철학과 신념을 유지하며 잡지가 공정과 균형감을 유지하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언론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


바제트는 자신의 전공인 정치 분야뿐 아니라 무역과 금융에 관한 글과 논문은 물론 작가와 문학에 대한 글에서도 뛰어난 문학평론가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또한 철학과 종교에 관한 성찰을 써 내려간 글에서는 생생한 시대 분위기를 드러내는 글로 다른 글들을 압도했다.

 

그의 글은 수려하면서 분명했고 비약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글 속에서 위트가 번뜩였지만 우울함과 고독이 배어 있었다. 그는 정치와 경제에 대해 해박하면서도 넓은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늘 허전했다. 팔방미인 격의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인해 그는 늘 주변의 곱지 않은 눈총을 견뎌내야 했다.


그의 시대에도 영국에서는 정가, 관가, 금융가와 언론계에서 조직력에서 앞선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제압하고 우월함을 유지하는 폐습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바제트는 “그런 집단일수록 자유, 관용과 포용, 기탄없는 토론, 그리고 반성이 없는 한 내부의 결속을 가져오는데 실패할 것”임을 예측했다. 어떻게 해야 조직이든 국가든 문명이 발전하고 확산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바제트가 주장한 이러한 전통은 영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데 그리고 이웃 국가들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선진화된 문화와 전통, 그리고 문명이 확립되는 핵심이 되었다. 





다시 우리로 돌아와 보자.

미국의 언론을 닮아서 그런지 우리 언론은 색깔과 노선이 분명하다. 언론이 제각각 자기 목소리 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들이 이리 쏠리고 저리 휘둘린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내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환경이니 ‘기레기’나 ‘사이비 언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런 지경이니 신문을 읽어도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는커녕 고집스러운 주관만 늘어가고 균형감의 상실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 된다. 이것이 올바른 것인가.


이제는 우리의 경제력도 많이 성장해서 사실 영국과 국민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우리보다 경제력이 뒤처지는 중국으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고 이웃 일본으로부터도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나.

‘우리 국민 존재의 가벼움’이 원인이 아닐까?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성취해서 얻기 어려운 문제들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기능해서 교육과 계도를 통해, 혹은 언론을 통해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수준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오히려 편 가르기에 익숙하고 언론도 그에 편승해서 각자 놀아나고 있으니 국민들이 품격 낮은 성정과 천민자본의 행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고결한 사람의 행태는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세끼 밥을 먹어도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주머니 사정이 비슷한 선진국 국민들이라고 해도 품격 있는 국민과 함량 미달의 국민으로 구분하는 서구사회의 교과서에 우리가 등장할까 걱정된다. 


바제트 시절의 《이코노미스트》紙라면 우리가 직면해 있는 이런 시대에  어떤 조언을 할까.


지금 우리 사회의 황색언론과 조악(粗惡)한 정치의 결합은 국가의 품위를 타락시키는 행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다. 이런 문화가 사회에 팽배해 있는 한 바제트 같은 인물 한 사람만의 역할로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그 많던 인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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