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Dec 09. 2021

아사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산책길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만발한 봄꽃들로 아름답고 가을에는 여름 내내 더위에 지쳤던 꽃들이 잎을 떨구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고적한 길로 변한다. 봄이면 봄다운 생각으로 가을에는 가을 가을한 생각으로 산책의 기쁨을 더해주곤 한다. 


집을 나와 오 분 여를 걸으면 산책길 입구가 나오고 또 오 분 여를 더 걷다 보면 좀 더 긴 산책길에서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동상을 만난다. 내가 걷는 이 길을 생전에 금아 선생도 즐겨 걸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산책로 이름도 선생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피천득 산책로.’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감동을 느끼며 읽었던 선생의 유명한 수필 ‘인연’이 떠오르고 어린 시절 선생과 아사꼬의 추억이 생각나면서 문득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아사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식민지국에서 온 까까머리 열일곱 살 어린 학생의 기억 속에 아잇적 아사꼬는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한” 모습이었다. 학생의 가슴은 얼마나 설렜을까.


유학시절, 궁금한 나머지 일본에서 온 여학생들 중에 아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는가 물어본 적도 있었다. 찾게 되면 마음속으로 아사꼬의 손녀쯤이 아닐까 짐작하기로 했었다.





아사꼬에 대한 금아 선생 기억 속의 마지막 잔영은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여인으로 변해버린 모습이었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선생은 마지막이었던 세 번째 만남을 갖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오늘도 내가 걷는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선생과 아사코만큼 국경을 달리하는 애틋한 인연은 없을지 모르지만 이런저런 인연의 끈들을 지니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인연은 부디 잘 매듭지어져서 금아 선생 같은 애잔한 추억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지만 옛 시절에 대한 추억이 없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내게도 그런 인연이 있었을까. 

기억의 유무와 상관없이 아마도 그리움이 묻어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스쳐갔을 거다. 2021년 깊어가는 겨울 문턱에서 가슴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어릴 적 나의 아사코를 추억하며 산책길을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위한 변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