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이 긴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그런 평가는 어쩌면 당사자들이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에 대한 그저 그런 시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박한 평가를 요약하면 ‘가방끈이 길다고 인격까지 훌륭한 건 언감생심(焉敢生心) 전혀 아니’라는 말로 정리된다.
가방끈 긴 사람들이 인격까지 고매하게 평가해달라고 한 적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인용구는 당연한 말인데도 어쩌다 가방끈이 긴 사람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희생자가 된 것 같아 사실 억울하다.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나를 어머니는 늘 걱정을 하셨다. 염려의 말씀 중에 어린 내 머리에 쏙 들어온 것은 “고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한테 누가 시집을 오겠냐?”는 표현이었다. 그 이후 ‘장가도 못 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공부를 하다 보니 이 지경이 된 거니 애초에 인격이나 품위 따위는 고려해본 적도 없었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고정관념(stereotype)’과 ‘편견(prejudice)’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 학교, 집단, 언론매체, 그리고 사회 내부에서 잘못된 가정과 왜곡된 판단으로 인해 타인이나 다른 집단, 다른 국가에 대해 떠돌아다니는 불완전한 정보에 손쉽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출처로부터 불확실한 가정에 의해 만들어진 고정관념과 편견은 제법 견고해서 개인 간은 말할 것도 없고 집단 간 혹은 크게는 국가 간 갈등과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 동양과 서양인에 대한 고정관념, 서로 다른 인종 간, 종교, 지역 간 편견 등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될 것이고 심지어 키가 크고 작은 사람과 뚱뚱하고 날씬한 사람에 대한 편견도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남자는 늘 강하고 용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이에 비해 여성은 연약하며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보편화되어 있다. 동서양을 구분하는 편견은 어떨까.
굳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이야기하며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를 불러내지 않아도 동서양 간에는 마치 커다란 성벽처럼 고착된 이미지가 제법 탄탄한 고정관념 속에 존재한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도 터무니없는 게 많다. 언론보도를 보니 미국에서 생활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 중 흑인이 23%이고 백인이 43%로 다양한 인종 중 백인이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조금은 흑인이 대부분을 수령할 거라는 편견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 사례다.
뚱뚱하고 날씬한 사람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는 비록 편견이라 해도 간단치 않다. ‘게으르고 욕심이 많으며 자기 관리에 성실하지 못하다는 주장에, 게다가 식탐까지 있다.’는 게 전자에 대한 편견이라면, 후자에게는 ‘예민하지만 자기 관리에 충실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하다.’라는 다소 우호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도무지 동의하기 어렵지만 정작 억울한 것은 편견의 피해자가 되는 당사자들이다. 입맛이 당겨서 음식을 맛있게 먹은 죄밖에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볼멘 항의가 없을 리 만무하다.
얼마 전 전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두 중년 여인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푹’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스크를 쓰고 있기에 망정이지 큰 오해를 받을 뻔했다. 두 여인은 비슷한 체구에 머리는 파마를 한 평범한 모습을 한 60세 전후의 나이쯤으로 보였는데 두 사람 모두 제법 살이 퉁퉁한 체형이었다.
여인 A와 B의 대화다.
A : 나 요즘 살이 많이 찐 거 같아. 너무 뚱뚱해 보이지?
B : 살이 찌긴. 보기 좋은데 뭘.
A : 그래두.
B : 입맛이 당겨?
A : 아니,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거 같아. 옷도 안 맞구.
B : 아니야. 얘. 너는 날씬해. 그냥 살이 쪄 보이는 거야.
A : (배시시 웃으며) 그런가.
B : 그래. 얘. (웃음으로 화답)
그날 이후 나는 살이 퉁퉁한 여인을 보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편견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네들은 살이 찐 게 아니라 단지 쪄 보이는 것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실을 왜곡하는 편견이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타자(他者)’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타자에 대한 지식을 늘려가는 것. 다양성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 적극적으로 다른 문화를 배우려는 자세.”
이탈리아 출신의 언론인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주장이다.
갈등과 대립, 그 속에 고정관념과 편견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넉넉히 수용할만한 평범한 조언이다.
음식 솜씨가 소박하시던 어머니 덕에 나는 군대 밥이나 집 밥이나 큰 불평 없이 맛있게 먹었다. 대한민국 군대 창설 이래 군대 밥이나 집 밥에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덕분에 군대에서도 키가 2cm가 자랐고 추운 곳에서도 잘 자며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불평 없이 잘 먹으며 슬퍼도 잘 울지 않는다. 그러니 군대 가면 ‘개고생 한다’는 편견을 저만큼 밀어두시길 바란다. (욕먹을 각오로 쓴 다분히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다).
인격이야 예전부터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의 눈빛은 여전할 거고, (이런 부류는 내 가방끈이 짧을 때도 그랬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던 사람은 여전히 사슴처럼 순수한 눈을 지니고 있을 테니 언급할 가치가 없겠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진정 편견 없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가방끈이 긴 사람들에 대한 왜곡된 편견에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고 또 당사자들의 책임이 있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우리도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성숙함이 무르익은 열린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능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단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