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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Nov 26. 2021

치매와 모성


“치매만큼 무서운 병은 없다”는 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평생을 같이 살며 희로애락을 같이 한 부부라도 한쪽이 치매에 걸리면 갑자기 남남이 되거나 낯선 손님으로 둔갑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아들을 남편으로 알아보거나 아내를 자기에게 밥을 해주는 낯선 이방인으로 생각한다.


밥 먹는 것도 잊고 종일 TV 앞에 앉아 있는 얌전한 환자나 욕설이나 폭력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나운 환자도 그의 의지는 아니다.

평생을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치매는 흔히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 등으로 인해 지능, 의지, 기억 등이 지속적으로 상실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질환을 자각하거나 인정하기가 어렵고 증상이 악화될수록 인지 기능에 장애가 생겨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니 주변 가족들의 책임감이 무겁고 막중해질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다.


요즘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치매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이에 대한 준비를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 한다. 치매에 도움이 되지 않은 행동과 습관은 하루라도 이른 나이에 가급적 피하고, 치매 예방을 위한 학습이나 노력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질환은 노인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파킨슨 치매와 알코올성 치매 등 70여 가지가 넘는다. 오늘날 치매는  심장병, 암, 뇌졸중에 이어 4대 중요 사망 원인으로 불릴 정도로 심각한 신경질환이 되었다.


치매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의학적으로는 뇌혈관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만성질환과 이와 연관성이 있는 비만을 꼽는다. 따라서 체중이나 혈관 관리의 꾸준한 관심이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 


성격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특히 냉소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률이 3배쯤 높다고 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협조적인 타입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치매 예방 효과가 높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치매의 원인과 치료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아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모두가 스스로 조금씩 노력하면 적어도 치매를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국제 정치사에서 유명한 한반도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치인의 얘기가 있어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을 패배시키고 전후 국제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영국과 소련의 지도자들이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당시 미국 측 대표인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이에 따른 혈관성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얄타회담 당시 루스벨트의 인지장애는 심각했는데 평소와 달리 회담장에서 실언을 연발했으며 즉흥적인 판단으로 주변을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대통령을 세 차례나 역임할 정도로 정치력과 판단력이 뛰어났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평화와 국제질서를 결정짓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루스벨트는 평소 앓고 있던 흑색종이 뇌와 복부로 전이돼 인지기능을 저하시켰을 것으로 의사들은 추정했는데 만일 그가 건강한 상태에서 회담장에 앉아 있었더라면 한반도가 분단되는 운명에 처해졌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얄타회담이 있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2시간 만에 사망했다. 


많은 유명 인사들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알츠하이머를 앓던 냉전을 종식시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 얄타회담의 또 다른 서방측 대표인 처칠 수상, 영화배우 찰튼 헤스턴, 찰스 브론슨, 팝가수 페리 코모,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 피터 포크, 컨트리 가수 글렌 캠벨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치매를 앓았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로빈 윌리엄스도 파킨슨병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우울증으로 64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봄, 경남 통영에서 치매에 걸린 86세 할머니의 행동이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할머니는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해져 있었다. 그녀의 인지기능에 유일하게 각인된 기억 하나는 아들의 차량이 빨간색이라는 사실. 세상에 빨간 색깔의 차가 얼마나 많은가.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빨간 색깔의 차가 주차되어 있을 때는 모아둔 현금과 아들이 평소 좋아하는 과자나 음식물을 차의 손잡이에 끼워 넣거나 걸어두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마치 ‘어머니의 사랑은 생색내지 않는 법’이라는 점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그녀는 평생 마음속에 아들에 대한 큰 빚을 지고 살아왔다고 한다. 오래전 남편과 사별한 후 6남매를 키우며 어려운 형편에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럴까. 

그 빚을 평생 갚아야 할 짐으로 생각하고 아들이 타고 다니는 차에 몰래 몇 푼이나마 돈을 넣고 돌아서는 행위로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려 했는지 모른다.





연구에 따르면 치매에 걸릴 확률은 남자보다 여성들이 약 1.8배 가까이 높다고 한다.

은막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아내 윤정희도 수년 전 치매가 와서 이제는 가족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오드리 헵번 같이 나이 들어서도 외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적 성숙함이 우러나오는 고결한 삶을 살기를 소원했었다. 그녀의 이상형인 햅번이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바람은 이제 이룰 수 없는 희망이 된 것일까.


가족은 물론 자신의 이름과 나이도 기억하지 못하며 정상적인 대화나 일상적인 평범한 삶도 스스로 하기 어려운 치매 환자인 어머니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희미한 빨간색 자동차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보였던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큰 울림을 준다.

평생 피아노 건반을 세심하게 다루던 손으로 아내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겨주는 백건우의 모습도 가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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