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사소한 것에 쉽게 감동하고 만족한다.
대부분 남자들은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고는 ‘크게 고민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며, 주어진 여건이나 환경 속에서 불평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지낸다. ‘대강 살자!’가 남자들에게는 환영받는 구호다. 이런 남자들의 단순함을 여성들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여성들은 대체로 남자들을 오해한다.
남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문제 될 일도 아닌 것을 심각하게 여기는 여성들의 태도를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 문제일까. 이는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는 아니다. 다만 여성들이 오해하는 남자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실제로 심각한 문제인지를 살펴보며 남자들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실제로 단순하기도 하지만 남자는 사실 성장 과정과 사회화 과정 속에서 그렇게 되도록 훈육받아왔다. 초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심지어 대학 초년생들에게 학교 교육은 말 그대로 일방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교육은 딸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딸과 비교해서 아들은 그렇지 못하다. 당연히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고 그 가운데 언성도 높아지지만 대부분 교정 차원에서의 올바른 지적이라 아들도 그냥 순응하게 된다.
때때로 자신의 뜻대로 고집을 피우기도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구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순응에 대한 자세는 더 단순해진다. 단순함은 종종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오지랖 넓게 관여하지 않으면서 과묵으로 이어지는데 사내는 촐랑거리지 말고 진중하고 과묵해야 한다는 집안에서의 교훈까지 더해져 남자는 가정에서의 교육에 순응하는 태도로 성장한다.
학교에 입학해서는 선생님의 교육방향을 놓고 이견은 있을 수 없고 무조건 순응하며 따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긴 우리 방식의 교육 풍토 속에서 머릿속의 생각과 지식, 가치관이 모두 제각각인 청소년기의 남학생들에게 다양성을 강조하고 그 속에서 정답을 찾아나가는 교육방식은 혼란 그 자체를 야기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따라서 선생님들은 획일화되고 쉽게 정리하는 방향으로 학생들을 지도했고 학생들은 거기에 맞춰 자신들을 단순화시켰다.
수업시간에도 심지어 서로 다른 생각을 놓고도 토론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정답 찾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나 선생님이 교육한 내용을 100퍼센트 암기했다가 답을 쓰는 학생이 당연히 우등생이 되었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질문 잘하던 아이가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성인이 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남자들이 많다.
오늘날 한국은 각자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주관식 문제에도 정답이 있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희한한 학습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남자가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의식이 채 성숙되기 전부터 반강제적 교육을 받은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청년기 남자들에게 군대의 경험이 남긴 충격은 정말이지 간단치 않다.
요즘 젊은 남자들도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과거 1980년대와 90년대에 군대생활을 경험한 당시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입대하는 첫날부터 사실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해진 기상시간에 일어나야 했고,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암기했고,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훈련했으며, 주는 것을 입고 또 받아먹었다. 맞지 않는 옷에는 몸을 맞추었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식사도 제공받는 3가지 반찬이 입에 맞는지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또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이행해야 했으며 토를 달거나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이적행위’가 될 수 있다고 협박도 받았다.
취침시간이 되면 하루의 생활을 회고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깊은 잠을 자야 했다. 나를 포기하고 자아를 망각하고 상념을 떨쳐버려야 시간이 흘렀다. 그런 공간에서 2~3년을 보내고 나면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순응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느끼게 된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지시를 완벽하게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입사 직후 깨닫는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직 내에서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설사 가장이라는 짐이 어깨에라도 얹혀 있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 무시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
이런 삶을 살아온 남자들을 ‘맛집 투어’를 사랑하는 감성과 개성이 넘치는 취향을 가진 여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해하기는커녕 그들은 남자들을 단순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긴다. 과연 여자들은 쉽게 비난하고 남자들은 당연히 비판받을만한 일일까.
젊은 연인들 간에 큰 갈등 거리 중의 하나가 남자가 여자를 자연스럽게 리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불만의 표시다. 남자가 평생 추억이 소록소록 우러날 아름다운 장소와, 맛도 평가도 훌륭하고 유명하지만 소박하기까지 한 식당을 센스 있게 리드하는 모습은 여자들 기준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리한 요구도 아니다. 그러나 남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단순함을 생각하면 그 요구가 남자에게 얼마나 큰 고민거리가 되는지 여성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들은 이렇게 학교와 군대와 직장에서 ‘잘’ 훈육된 모습으로 장년을 거쳐 중년과 노년기를 보낸다.
단순한 남자들에게 주입된 교육의 효과는 얼마나 대단한가. 남자들은 아내가 무심히 만들어준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 앞에서 무한한 감동을 하며 “아내가 나를 각별히 생각하는구나! 하고 착각한다. 이 순박함을 단순하다고 폄하하는 여자들이 옳은가 아니면 남자들의 단순함이 사랑스러운가.
남자에 대한 여자들 비판의 대부분은 ‘술 좋아하고, 지저분하고, 불규칙한 생활을 밥 먹듯 하고, 생각 없이 사는 동물’ 정도로 간단히 정리된다. 여성들은 이 물음을 던져놓고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라고 깊은 한숨을 쉬고는 스스로 답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는 경향이 짙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술과 담배의 사회학’이라는, 여자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적 현상이 존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직장생활이나 친구관계, 선후배 관계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문제들 상당 부분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남자들은 그 현상 주변에서 발생하는 시간이나 돈, 그리고 여자 친구의 우려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은 남자의 그런 태도가 자기를 경시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남자들에게는 애초에 그런 고려는 없었으므로 여자의 오해는 종종 남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남자들이 여성들로부터 흔히 듣게 되는 ‘생각 없이 산다.’는 표현도 억울한 면이 있다.
남자는 사냥이 주된 업이던 아주 오래전부터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섰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함이 주된 목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단 동굴 밖으로 나서면 자신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사냥감을 발견한 후에는 생각할 겨를 없이 쫓아가야 한다. 사냥이라는 작업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길게 고민함 없이 몸을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어느 사냥감을 먼저 잡을까 하고 고민하다가는 사냥감이 달아날 수도 있고, 혹은 옆의 동굴에서 뛰어나온 이웃 동굴의 가장에게 먹잇감을 뺏길 수도 있다. 따라서 깊은 고민은 불필요한 사치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남자들에게는 이런 DNA가 지금까지 중요한 유전자로 남아있다. 지금도 공기업이나 사기업에서의 정책결정 과정을 보면 투자사업 아이템을 놓고 고민할 때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시간의 적절성, 즉 ‘시의성’이 더 평가받은 것을 보면 남자들이 주류인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남자들 DNA 뿌리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하다.
어차피 신의 피조물인 인간으로 이 땅에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운명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탁월한 장점을 바탕으로 남자들을 평가한다. 게다가 자신들에 비해 남자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 우월성은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남자는 여성이 자신의 장점은 부각하고 상대인 남자의 장점은 폄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에 대한 여성들의 비판을 보면서 세태의 변화와 함께 남자가 참 안됐다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다른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 혼자만 궁상을 떠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