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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Jul 14. 2022

여자의 언어, 남자의 언어


그것이 남자의 착각이었다.

원래 고수는 말이 없는 법이다.


당신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생면부지의 여자는 이미 당신의 열띤 설레발을 가소롭게 냉소하며 평가하고 있다. 천하의 김제동도 여자 앞에서는 하수다. 그가 종종 여성 앞에서 수줍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논객 유시민의 지식과 김제동의 언변을 합친 능력을 갖춘 여인이 앞에 앉아 지긋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진땀 나는 일 아닌가. 처음 만난 여자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었을 뿐이다.


남자의 착각은 여자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첫 만남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남자는 부족한 지혜와 더 이상 나올 것 없는 머릿속 지식을 짜내며 대화의 소재를 끌어낸다. 남자가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는 얘기를 두어 시간 떠들고 나면 밑천이 바닥을 드러낸다.


이 무렵이 되면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여자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비장의 카드,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등장시킨다. 군대생활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야 말로 여성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컷 전사들의 무한대 허풍 제조가 가능한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아닌가. 거기에는 한 달 치 월급이 걸려있고, 포상휴가도 걸려 있으며, 손홍민이나 이강인 수준이 연출하는 드라마도 무궁무진하다.


어쨌든 남자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여자는 그저 다소곳이 미소 지으며 당신의 연료가 어떻게 고갈되는지를 관찰한다. 그렇게 당신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나면 여자는 당신이 관계의 지속이 필요한 대상인지, 아니면 심심풀이 소일거리의 대상인지, 혹은 자신의 허영심을 물질로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인지를 쿨하게 판단한다.


연구에 따르면 여자는 하루에 약 20,000개가량의 의사소통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평균 6~8천 단어의 말과 8~1만 개의 제스처와 표정, 그리고 머리 끄덕임 이외에 추가로 2~3천 개의 소리를 사용한다. 그 덕분에 영국 의학협회 보고서는 ‘여자는 남자보다 턱이 아플 가능성이 네 배나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면에 남자는 여자의 고작 3분의 1인 7,000여 단어. 하루에 2~4천 개의 단어, 1~2천 개의 소리, 2~3천 개의 몸짓 언어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여성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화 중에 도피하려는 배우자 가운데 85%는 남편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여자가 논리적이고 다변적인데 반해 남자는 눌변이고 대개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남자는 상대방과 한창 진행 중인 대화나 논쟁에서 종종 쉽게 포기하는 태도를 보인다. 남자는 분석적이고 언어적인 활동을 할 때 주로 왼쪽 뇌를 사용하나 여자는 양쪽 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듣고 기억하고 말하는 중심센터인 측두엽 부위의 신경세포 숫자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10%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왼쪽 대뇌의 손상은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언어능력의 장애로 나타나고 있으며, 오른쪽 대뇌의 손상은 남자에게 공간능력의 장애로 드러난다고 연구는 말한다. 또한 여자는 철자를 생각하는데 뇌의 양쪽 모두를 사용하는데 반해 남자는 주로 왼쪽 뇌를 쓴다고 한다. 뇌의 오른쪽은 감정을 이해하는데 주로 사용되므로 여자들은 쓰려고 하는 철자를 생각하는데도 더욱 많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동원하는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우울한 결론이지만 아예 남자의 머리 구조는 여자와의 대화에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못한다.

강아지와 고양이, 인형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 그리고 흘러가는 구름과도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여자의 무한한 능력을 남자가 어찌 상대하겠는가.


들을 때마다 남자들을 기가 막히게 하는 노래가 있다. 멜로디가 주는 감동 때문이 아니라 가사가 주는 충격 때문이다. 1976년 나훈아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가수 심수봉이 1979년 발행한 앨범에서 풋풋한 모습으로 다시 불러 히트한 ‘나는 여자이니까’라는 노래다. 가사를 보면 왜 남자들이 맥 빠지는지 안다.



사랑한다 말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난 싫어 나는 여자이니까

만나자고 말할까 조용한 찻집에서

아니야 아니야 말 못 해 나는 여자이니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웃음을 보였는데

모르는 채 하는 당신 미워 정말 미워

미워한다 말할까 싫어한다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말 못 해 당신 사랑하니까



사랑한다 말해요 좋아한다 말해요

아니야 아니야 난 싫어 나는 여자이니까

만나자고 말해요 조용한 찻집에서

아니야 아니야 말 못 해 나는 여자이니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웃음을 보였는데

모르는 채 하는 당신 미워 정말 미워

미워한다 말할까 싫어한다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말 못 해 당신 사랑하니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도대체 말을 해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남자들에게 여자는 웃음만 살짝 띄어놓고 모른 체한다고 밉다고 한다. 여자 자신은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고 말 한마디 안 하면서 웃음을 살짝 보일 테니 다 알아먹으라고 요구한다. 암중모색의 대화술을 여자는 선호하지만 남자는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못 알아듣는다.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여자의 언어 표현 방식이다.


남자들은 식사나 술자리, 운동과 같이 무언가를 같이 하고 있을 때 더 친밀감을 느낀다. 직장에서나 친구들 간에도 식사나 술자리를 같이 하는 친구들에 대한 친밀한 느낌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더하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운동을 같이 함으로써 더 친하고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활동적인 모임을 통해 언어의 발전을 기하기는 어렵다. 그저 웃고, 땀 흘리고, 취해서 헤어지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들은 행동보다는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배려하고 존중하는 말을 들을 때 더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도 행동보다는 언어 표현을 통해 쉽게 열린다. 이런 형편이니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때 다시 만나도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고, 한 시간을 넘게 통화하고도 ‘우리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라며 대화를 잠시 멈추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남자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장면이다.

 

남편이나 이성과의 갈등 속에서 여자들은 늘 대화에 목말라한다. 그런 까닭에 여성들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간단히 말로 사과하고 마치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간 듯 착각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코미디 프로에서 종종 나오는 남녀 간 대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 남자가 지난 일에 대한 잘못을 사과하고 여자에게 다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자고 요구할 때 여자가 흔히 하는 말이다.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남자는 이런 여자의 요구에 그냥 말문이 막힌다. 이런 남자의 태도를 보며 여자들은 ‘단세포 같은 인간’이라거나 ‘짐승 같은 인간’이라고 비난하며 하등 동물 대하듯 한다. 이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문제는 남자들이 여성과 같은 수준에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자는 남자의 감정을 느낌만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감정을 말해줘도 잘 모른다. 남자와의 대화에서도 여자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답변이 아니라 자신에게 공감과 호응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무장한 남자는 사실의 규명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지랖 넓게 나서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 대부분은 여성과 오해가 생겼을 때 자신의 사과나 행동이 모든 갈등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만큼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히는 대단한 착각인 것이다.


남자들의 착각은 길게 변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자들이 그나마 사과했다는 행위 자체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 않느냐는 항변과 동일시된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잘 알지 않느냐’는 그런 주장이다. 말을 수십 번 해도 오해가 생기고 그것도 미진해서 만나서 또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속이 풀리는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잘 알지 않느냐’는 남자들의 주장은 여자들의 염장을 지르는 행위 그것에 다름 아니다.


시간을 둔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도 수용할 생각이 별로 없는 여성들은 ‘알아서 새겨들으라.’는 남자들의 배짱에 ‘남자들의 머리는 도대체 왜 붙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사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사조직이든 공조직이든 상관없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여자는 수다로 남자를 질리게 하고, 남자는 침묵으로 여자를 오해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상사의 명령에는 이의를 달지 않고 눈치껏 알아서 따르겠다는 자세가 ‘네’라는 간단한 답에 담겨 있다. 여자들은 이토록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기까지 한 대화의 기술이 남자들 상호 간에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세계 속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 아닌가. 실제로 말이 많은 남자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과묵하고, 알아서 하고, 적당히 슬기롭게 처리하는 능력이 어려서나 청년기,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받는다.


여자는 일상을 통해 매일매일 언어 훈련을 한다. 남자는 말이 필요 없는 몸으로, 또 감각으로 부딪치는 일상에 익숙하다. 그런 까닭에 아무도 언어를 사용하는 승부의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쉽게 포기하는 여성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만 포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여성은 “울화통이 터진다.”며 마음의 병을 호소한다. 


최근 여성들이 위로받을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네덜란드의 한 연구팀이 40명의 남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매혹적인 이성과의 대화가 뇌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남자의 경우 아름다운 미인과 대화할 때는 집 주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심지어 기억력 테스트에서도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여자에게 매력을 많이 느낀 남자일수록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대화 도중에 논지를 잃고 헤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결코 남자의 무능 탓은 아니라는 의미다.


반면에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와 대화해도 기억력 점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런 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여자는 좌우뇌를 모두 동원하여 남자의 나이, 경제력, 친절함 등을 다양하게 평가하나 남자는 왼쪽 뇌 위주로 분석하여 외모의 아름다움만 보고 전체적인 이미지, 성격, 분위기 등을 다양하게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볼 때 모든 책임을 무조건 남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은 남자를 왜 이렇게 창조하셨을까.


  


(졸고 [동굴 밖으로 나온 남자]에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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