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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Jun 29. 2022

영국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나


옆집에서는 바나나와 삶은 감자를 기름에 튀길 때 나는 눅눅한 단 향기가 늘 스며들었다


습기 가득한 짙은 안개 속에서 느끼게 되는 무겁고 탁한 공기 냄새


빈곤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은 낡은 건물의 잿빛 외벽





이른 시간인데도 파인트 우유 한 팩과 빵 몇 개를 담은 종이봉투를 들고 느그적 걷는 사내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아 담배를 돌려 피우며 의미 없는 웃음과 쓸데없는 소음을 만들어 내는 희망을 포기한 검은 피부의 아이들


뛰어난 국가대표 육상선수 '린포드 크리스티'가 배출된 동네라고 관공서에서 오래전에 붙여놓은 반쯤은 찢어진 낡은 포스터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웃집 창문을 뜯고 들어가 훔친 물건을 팔아 며 칠 치 식량을 만들고


물건을 도둑맞은 집은 또 다른 이웃의 문짝을 뜯어 자신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암울한 동네


경찰차와 병원 구급차의 요란한 응급 사이렌이 매일같이 서로 경쟁하듯 요란한 거리


길을 지나가다 마주치는 이웃끼리는 눈으로만 인사를 건네야 하는

하나는 자메이카에서, 다른 이는 파키스타니, 또 다른 사람은 모리셔스가 고향인 까닭이다





11번의 거처 중 5번째 살던 집 주변의 풍경은 꿈속에서 늘 이렇게 나타난다.


대서양 건너에서는 할렘이 이랬겠지만 더 살풍경한 지역이 훨씬 많았더래 서 그나마 행복을 가장하며 살았던 시절


리버풀리안들은 비틀스를 팔아 축구에 열광했고, 셰필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영화 '풀몬티'로 승화시켰다





이방인인 나는 뜨거운 english tea에 스콘 조각을 토박 토박 씹으며 홀로 남은 기숙사에서 추위와 향수를 달래며 눈물을 쏟곤 했다


제국의 영광은 여왕에게


신민의 고통은 내 심장으로


어쨌든 영국은 '신사의 나라'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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