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맘과 대치하는 할머니 맘

방문을 뜯어내는 교육 대신, 세상을 여는 여행을 택하다

by 영동 나나

“나는 우리 며느리가 불쌍해.”

“제대로 된 옷 하나 못 사 입고, 저녁밥을 네 번씩 차리면서 정작 저는 서서 밥을 먹어”

“어느 집은 아이들 감시하느라 방문을 다 떼어냈대.”


아들과 딸이 대치동에 사는 친구가 자랑인지 걱정인지 모를 이야기를 한다. 그 며느리는 남편 식사를 준비하고, 학원 마치는 시간이 다른 세 아이가 도착하는 대로 밥을 주고, 또 다른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다. 시간도 없지만 세 아이의 비싼 학원비가 부자인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다. 가끔은 시어머니가 용돈을 보태주지만, 매번 적자라며 우는소리를 한다고 한다. 며느리와 딸이 대치맘으로 살면서 경쟁적으로 아이들 공부를 시키는 모양이다.


그들이 그 고생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인 손녀는 배치고사에서 상위 0.02%라는 결과를 받았다. 전국 중학생이 약 130만 명, 학년당 44만 명 정도니, 80등 안에 드는 셈이다. 말 그대로 ‘최, 최상위’이다. 그런 아이라면 대치동이든, 미국이든, 어디에서든지 최고의 교육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랑과 걱정이 섞인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슬프게도, 아니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우리 손자는 대치동에 살 가능성이 없다. 내 딸은 대치맘이 아니고, 우리는 돈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원 대신 게임을 하다 혼나고, 숙제를 마치면 스케이트보드나 축구를 하며 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불안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딸과 나는 다른 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긴 여행을 생각했고, 계획하며 대치맘과 대치되는 할머니 마음을 적어 본다. 방문을 떼어 놓고 감시하는 교육이 아니라, ‘움직이는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주고 싶다.


대치동맘 vs 할머니 맘

지식: 정답이 있는 문제 vs 정답이 없는 생활 체험

시간: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vs 오늘을 온전히 산다

관계와 소통: 친구가 경쟁자 vs 함께 배낭을 멘 동반자

세상을 보는 눈: 모니터를 통해 본다. vs 오감으로 느낀다

나와 남편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 50세를 전후로 퇴직하게 되었다. 물론 IMF라는 상황이 퇴사를 앞당겼지만 조직 안에서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소모품이었다. 그런 뼈아픈 경험을 한 나는 아이에게 엘리트 코스를 원하지 않았고, 자신이 주도하는 일을 하도록 이야기했었다.


딸이 직장이 아닌 사업을 하며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잘못 판단해서 고생을 시키나 하는 후회도 하게 된다. 그러다 고비를 넘기고 좋은 반응이 오거나 힘들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며 밤샘할 때는 “그래, 그게 사는 재미지.”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크고 작은 일을 만나며 느끼는 어려움, 그것을 해결했을 때 기쁨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마찬가지다. 100점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끈기와 다양한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의 고마움을 알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일등을 하는 것보다, 함께 일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살면서 만나는 고통, 고난 속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대한다.


대치맘의 노력을 존중한다. 그들의 헌신이 우리 사회의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고 있고, 나 같은 할머니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 주고 싶다.


‘아이들의 방문을 떼어내는 대신,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주는 방식으로.’




어제도 한 시간 반 동안 제미나이와 씨름하다가, 화를 내며 챗 GPT에게 가서 하소연해 보았지만 내 맘에 드는 사진을 만들지는 못했다. 내가 문제다. AI 세상에서도 '내 탓이요.' 하며 살아야 하나. 결과물이 이 모양이어서 대문 사진을 바꿀 수 없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