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플랙스
“할머니, 우리 뉴칼레도니아로 가요, 내가 좋아하는 도마뱀이 거기 산데요.”
“일본 하고 중국 가고 싶어요, 귀여운 것이 많을 것 같아요.”
“난 별 상관없어요.”
아이들의 바람처럼 가고 싶은 곳을 다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에겐 제한이 있다. 6개월 동안 여름옷만 가지고 출발할 것이고 각자 짐은 백 팩과 20kg 캐리어로 제한한다. 항공, 먹는 것, 입는 것, 숙소, 입장료, 교통비 모두 최소한으로 한다. 이유는 돈 플렉스를 하려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AI에게 이런 조건으로 6개월간 여행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달라고 하였다. 런던을 시작으로 유럽을 거쳐 미국 동부에서 중부, 서부를 지나 캘거리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장소를 캘거리로 한 것은 작은 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캘거리에 도착하면 우리는 6개월의 긴장감이 무장 해제되어 며칠을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줌 미팅을 하며 일정을 보여 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시간 동안 구글 지도에 표시하고, 가고 싶은 곳에 깃발을 꽂는다. 무료 박물관이나 공연은 없는지, 이동 거리는 얼마나 걸리는지를 찾으며, 아이들이 알고 있는,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방문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첫째는 쇼핑하고 싶다고 하고,
막내는 “그럼 우리, 호텔은 한 번도 안 가요?” 한다.
“호텔에서 자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이야기하자 화면 속 아이들이 조용하다.
둘째가 “할머니, 그런데 우리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요?”
“그럼, 먹는 건 잘 먹어야지.”
그렇게 장담하듯 말하면서 마음이 움추러든다. 경험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닌지. 먹는 것까지 걱정할 정도로 내가 심하게 말하였나 보다. 하지만 먹는 것도 집에서 먹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먹기 싫어요, 맛이 없어요”
이런 말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긴 아이들보다 내가 더 걱정이긴 하다. 먹고 싶은 것은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 내가 먼저 규칙을 어길지도 모른다. 우리는 관광지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을 가려는 것이고, 유명한 그림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작품을 보려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것과 친해지는 시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가능하다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아프리카 아웃리치를 다녀온 손자는 가끔 그곳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아랍어를 할 수 있으니, 유럽의 난민 사역 현장을 찾아보고 싶다. 아랍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들과 눈을 맞추며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할아버지는 바쁘다.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노인복지관에서 영상 만들기를 배우고 있다. 매일 배운 것을 연습하고 내게도 가르쳐 준다. 노인복지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출석한다고 전해준다. 그분들도 여행을 가느냐며 웃었더니, 벌써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다들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할아버지의 다른 준비는 여행의 의미와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40주 간의 교재를 만드는 것이다.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참고해 우리 수준에 맞게 정리를 하고 있다. 여행 중 힘든 일이 있고 갈등이 생길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떤 동기로 시작했는지, 생각하는 방향을 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인 나는 브런치 작가니까 여행기를 써야 할 것이다. 노인복지관에 여행기 쓰기 강의가 없으니 나는 유명한 여행기를 보고 공부해야겠다.
사실 이 시간이 기대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할아버지의 두려움은 체력이나 길을 잃는 것,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 돈이다. 여유 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더 모아서 나중에 여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때는 아마 돈이 많아도 우리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이 성장해서 여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모자란 돈이지만 할 수 있다면 지금 가고 싶다.
여행하며 돈의 플렉스를 보여주면 좋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바쁘게 살던 삶에서 떠나 느리게 다니며 시간의 플렉스를 즐겨보자. 그것이 내 플렉스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료를 찾는다.
그래서 호텔을 포기한다.
그래서 많이 보지 않고 오래 보려 한다.
AI는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게 여행지를 찾아 주었고, 경비를 아낄 방법을 다양하게 알려 주었다. 내가 질문하지 않은, 내게 필요한 정보도 알려 주면 좋을 텐데. 이 분은 아직 나를 잘 모르나 보다.
하지만 멋진 동행자이자 협력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