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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동 나나 May 07. 2024

마지막 권력

이세이 미야케

 

나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내 행동과 말이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다. 그동안의 교육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것, 자기 계발서 등을 통해 배운 것으로 나를 포장하여 표현한다. TPO라는 말을 배운 후 옷이나 화장에 신경 쓰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그럴듯한 좋은 말과 행동을 하려고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타협일 수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고 일을 해결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습이다. 내가 받은 교육이 그러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예절, 예의라고도 한다. 


 요즘은 나를 나타내라고 한다. 나를 드러내지 않은 글이나 일은 환영받지 못한다. 나의 감성, 나만의 경험, 감추어진 나를 끌어내라고 한다. 나답게 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나답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 또는 도울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이세이 미야케의 옷이나 가방을 좋아한다. 이 분의 옷은 입었을 때 원래 만들어진 모양이 아니라 입은 사람의 몸에 따라 스타일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날씬해서가 아니라 분위기도 특별하고 편해서 입기가 좋다. 가방 또한 내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디자인은 그가 했지만 마지막 디자인은 내가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우연히 이세이 미야케에 관한 글을 읽다가 그분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분의 옷을 좋아하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었다.


 

       



‘원단 한 장을 활용해 옷 한 벌을 만드는 콘셉트로, 원단에서 낭비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입는 사람에게 디자인의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세이 미야케



옷을 입는 사람에게 디자인의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니. 옷을 만들 때 그런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가 얼마나 있을까? 


 


 이분도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살았다.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멋을 채워주고자 하였다. 완성된 작품을 만들고 싶었겠지만, 소비자에게 마지막 권한을 주었다. 





 내 안에 혈액이 흐르는 것 같이 창조성이 내재하여 있다. 상처가 나서 내 피를 보기 전까지 피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창조성이 드러날 시간이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지금 내 의지로 창조성이 드러나게 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이다. 


 이세이 미야케의 생각처럼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마지막 권력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서 남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나를 의식하려고 한다. 


*위의 사진과 인용글은 Design+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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