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동 나나 May 16. 2024

동행

상처를 남긴 산행


 갈기산 등반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산하는 내내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자면서도 ‘동행’의 의미를 생각한다. 여행, 등산, 식사, 비즈니스 미팅, 많은 경우와 다양한 장소에 같이 갈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각 상황에 동행할 만한 사람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여행을 하며 계속 불평을 하는 사람, 식당에 가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안 좋고 예의가 없는 사람, 비즈니스를 망쳐 버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제삼자가 없이 둘이서 만나 식사를 하고, 상대의 성격을 알고 이해한다면 긴 여행도 같이 갈 수 있다. 나는 어제 친한 친구 하나를 마음 속에서 제외했다. 등산을 갈 때 이 친구와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서 20km 떨어진 갈기산(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친구 부부와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가까운 곳이라 1시경 출발하여 등반은 1시 반에 시작하였다. 시작부터 가파른 등산로가 오랜만에 산을 타는 맛을 느끼게 하고 열심히 정상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중간에 친구 남편이 오지않아 기다리니 다리를 절뚝거리며 온다. 뒤에서 오다가 배낭을 맨 채로 굴렀다고 한다. 한참을 쉬고 내린 결론이 왔던 길로 내려가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능선을 따라 등산로의 안내대로 내려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정상을 찍고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능선이 그냥 능선이 아니었다. 수십 길 절벽을 옆에 두고 암벽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하며 말갈기 암릉이라는 곳을 가야 했다.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한다는 우리지만 힘들고 두려웠다. 같이 간 친구는 완전 몸이 얼어붙어 바위에 접착제를 발라 놓은 것처럼 엎드려 꼼짝을 하여 하지 않았다. 내 남편은 도와주려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말을 하지만 도움이 안 되었다. 


 난 옆의 바위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무슨 일이 생길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상상을 하니 내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도와주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본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친구 남편과 내 남편이 도와주지 않자 한참 후에 친구는 서서히 움직이며 옆으로 기어 왔다. 그 후로 친구는 다리가 얼어 붙어 낙엽 위를 미끄럼 타듯 앉아서 그 산을 내려왔다. 늦게 출발하기도 하였지만 사건 사고가 많았던 터라 서서히 해가 지고 달빛을 받으며 산길 2.7km를 내려오니 밤 9시 반이었다.






                                             〈사진은 블로그 채약산에서 가져왔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네 사람의 성향이 드러났다. 남편은 자기도 이 산이 처음인데 길을 찾는 사람이 되어 캄캄한 산 속에서 이리저리 길을 찾아냈고, 친구 남편은 걷지 못하는 아내를 불평하며 도와주고 있었다. 친구는 이렇게 악산을 누가 오자고 했냐며 다리는 얼어붙었지만 입은 살아 있었다. 자신의 두려움이 커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이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에 놀랐다. 



                                                   〈 갈기산 주차장으로 내려오며 〉   






 나는 이 산행을 아티스트 데이트로 생각하고 길을 떠났다. 봄기운을 느끼고 싶었고 산에 올라가 파노라마를 즐기고 싶었다. 그런 내 생각은 사치였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절벽을 지나왔다. 산속에서 어두워지고 위험한 구간을 지나고 나서 걸으며 다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티스트 12주 차를 읽고 써야 하는 글도 생각이 났다. 네가 생각해 놓았던 주제는 믿음과 신념이었다.


 어두운 산을 내려오며 나는 믿음이 있었다. 위험을 지나게 해 준 하나님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산길이지만 결국은 우리를 평지로 이끄실 것을 믿었다. 수시로 반복하는 얼마를 가야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누가 오자고 했느냐는 질문을 무시했다. 그저 묵묵히 내려오는 길을 따라 걷고 계곡의 물을 따라 내려왔다. 3시간가량 캄캄한 산속의 헤맴이었지만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내 신념이었다. 난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리라는 것, 그것을 믿고 앞으로 걸어 나가면 된다는 것이 나의 태도였다. 어제의 산행은 나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간이었고, 그 믿음을 나의 신념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갈기산은 불친절한 산이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 자연산 그대로여서 산악인이라면 제대로 산을 즐길 수 있겠지만, 사고가 자주나는 산이라는 것을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비석도 있었다. 초보자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산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권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