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중년여성, 사회의 정상성에 반기를 들다

by 노을여운

엄마는 2남1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밑으로 남동생들이 줄줄이 딸려 있는 집이었죠


K장녀로의 책임감은 아마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된 운명이었겠지만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어렸을 적 돈 벌러다니기 위해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홀로 남겨진 외할머니도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거의 작은 엄마로서 남동생들을 케어해야 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동생들 밥 차려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한창 철없이 이뻐야 할 나이에 엄마는 꽤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을 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는 남동생들을 위해 바로 취업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가장 감당하기 힘들었던 건 '굳이 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냐'는 사회의 시선


엄마로서는 청량리에서 영등포까지 먼 거리를 매일 오고가면서도 나름의 자아 실현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 역시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은 데다가 많은 불합리한 대우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남자 상사의 커피를 타고, 회식자리에선 앞에 나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 현실..

여성으로서의 덕목은 능력 좋은 남자를 만나 아이를 잘 키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오늘날 여성을 향한 그러한 왜곡된 시선은 많이 옅어졌지만 당시에는 마치 강화유리처럼 견고했을 겁니다


결국 엄마는 26살의 나이에 정규직 남성 직원이었던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빠는 대기업 정규직에, 고학력자에, 부모님이 땅까지 갖고 있어서 어쩌면 조건적으로 완벽했을 수 있습니다

엄마는 정상적이고, 평탄하게 살아가길 희망하며 사회의 규범을 내면화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첫 출산을 하고,

3년 후에는 두 번째 출산을 하며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약 20년간 살아가게 됩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줄로만 알았던 엄마


오랜 기간 평범하고, 정상적인 한국 중년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엄마는

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회의 정상성에 기꺼이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엄만, 조정이혼 과정에서 필요한 기초조사표를 작성해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종이에 써져 있던 엄마의 이혼 의사는 '100%' 였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 싶어하지 않아 했고, 매우 힘겨워하던 엄마였기에

100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참 먹먹해졌습니다


이제 엄마와 저는 사회의 정의가 아닌 우리만의 정의를 내리며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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