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나무를 벌목하는 성실한 나무꾼은 어느날 우연히 썩은 나무 밑동을 본다
썩은 나무 밑동은 흉측할 뿐더러 악취까지 올라온다
나무꾼은 간절하게 그 썩은 나무 밑동을 없애버리고 싶지만, 밑동이 워낙 거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저 죽일 듯이 그 밑동을 노려보는 것
하지만 밑동은 그 마음도 모른 체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꾼은 매일매일 그 밑동을 노려본다
이제 다른 나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무꾼은 어느새 자신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무꾼은 어느날 홀연히 마을을 떠나는 길을 택한다
매일 썩은 나무 밑동을 노려보는 것과 정든 마을을 떠나는 것 둘 다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나마 덜 불행한 것을 택한 것이다
나는 나무꾼이었다
아빠가 처음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난 엄마한테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자꾸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거짓말을 했다
엄마를 속이는 것만이 엄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때론 하얀 거짓말이 검은 진실보다 백번, 천번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아빠의 중독 문제가 도졌다는 걸 알면서도 회피했다
하지만 회피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회피함으로써 내 마음은 잠깐만 편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악화된다
아빠는 내가 빌려준 돈도 그대로 코인에 꼴아박았다
그래놓고서 뻔뻔하게 날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나는 썩은 나무 밑동에서 악취가 펄펄 나는 것을 노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아빠가 코인 투자로 조금이나마 성과를 거두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결말은 최악을 향해 흘러간다
문제는 계속 악화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곪아갔다
결국 나는 독립 날짜를 조금 일찍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빠를 안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썩은 나무 밑동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쉽고, 빠르지만 최악의 선택인 정든 마을을 떠나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난 아빠가 없는 낯선 곳에서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려 한다
물론 아직도 썩은 나무 밑동이 종종 생각나곤 한다
하지만 그 기억도 점점 옅어지리라 믿는다
먼 훗날 나무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르다보면
나의 마음은 과연 편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