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끝끝내 지키고 싶어했던 건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부유한 삶도,
문제 한 점 없는 완벽한 가정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모두가 아프지 않고 제 삶의 몫을 묵묵히 해 나가는,
그러면서도 가정의 울타리를 어렴풋이 느끼곤 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2022년 위기의 목격자로서 저는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런 일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면서 오히려 저를 나무랐습니다
물론 세상에 이혼해야만 마땅한 일 같은 건 없겠지만,
어쩌면 엄마는 그때 당시에 목에 칼이 들어왔더라도 딱 한 번이었을 뿐이라며
이혼을 안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때 당시 엄마는 미련해보였고, 불쌍해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불행을 원동력 삼아서 다시 또 열심히 살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죄를 저질러놓고도 이혼 운운하는 망나니 같은 아빠를 데리고 제발 같이 살자며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한 지 어언 3년이 흘렀던 것이지요
아마 그 3년 동안 엄마에겐 그 어떤 불행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삶의 굳은살이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지난달 또 다시 찾아온 위기 때,
저는 엄마에게 "아빠랑 제발 이혼해. 이렇게 빌게"라고 말하였지만, 엄마는 이번에도 절 이해하지 못하는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아빠가 진 빚이 엄마가 감당하기 너무 큰 액수라는 걸 알아버렸을 때,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그래, 나 네 아빠랑 이제 도저히 못살겠다. 그만하고 싶다.."
알고보니 엄마는 아빠가 또 코인에 손 댄 것을 내심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동안 아빠를 어르고 달래며 어떻게든 아빠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애원하고 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빠는 감쪽같이 엄마를 속였고, 엄마는 쓰나미같이 밀려오는 허망함과 배신감에 이제는 이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앵무새같이 이혼, 이혼 말하며 이혼을 종용하던 저와
단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 없다가 마침내 이혼을 얘기하게 된 엄마에게 있어 이혼이 가지는 단어의 무게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저는 엄마가 이혼을 처음 말했을 때,
엄마의 얼굴에서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좌절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엄마 손으로 엄마가 그렇게도 지키고자 했던 꿈, 자존심, 인생을 엄마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니까요
엄마에게 이혼이란 그저 혼인 관계의 정리가 아니라
그동안 두렵지만 용기있게 내딛었던 모든 발걸음을 스스로 부정하고, 회의해야 하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내 모든 삶의 자취들에 물음표를 다는 일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그래서 전 최근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엄마의 인생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