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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Feb 04. 2020

영화를 볼 때 마주하는 흑백 논리

인터스텔라는 정말 ‘이과생’들만을 위한 영화일까?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시오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노년은 날이 저물수록 불타고 포효해야 하기 때문이니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영화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딜런 토머스의 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영화의 주제이자 내용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글




출처: 네이버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의 9번째 장편영화, <인터스텔라>는 지난 2014년에 개봉해 한국에서 1000만관객까지 동원한 국보급 외화영화 중 하나이다. <인터스텔라>가 흥행 뿐 아니라 작품성 면에서도 유독 한국 관객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급 외화영화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엄청난 지지’라는 측면 속에 존재하는 일련의 공통점을 통해 관객들의 인식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과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다면, 우리 이과에겐 <인터스텔라>가 있다.”


“이과생들에게 교과서 같은 영화”


-왓챠, 네이버 리뷰



분명 대부분의 많은 관객들이 <인터스텔라>를 ‘이과생이 만들고, 이과를 위한, 이과 영화’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배경이 우주이며 블랙홀이나 상대성 이론과 같은 물리학과 천문학의 정수가 영화의 중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놀란 감독이 <인터스텔라>를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기독교적 아가페, 즉 사랑이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렇다면 <인터스텔라>는 어떠한 방식으로 '사랑'을 그려내고 있고, 이를 통해 오직 ‘우주’와 ‘물리학’만을 다루고 있는 영화 인줄 알았던 이 작품이 지니고 있던 또다른 '내면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천천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우주는 부녀를 위해 존재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주인공인 조셉과 그의 딸인 머피는 위에 나오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의 시처럼 ‘’쉽게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난의 상황이 닥친 지구에서도 과학의 뒤를 좇고 하늘을 향한 이상을 그리는 부녀로 나온다. 즉 이들은 영화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인 재난 사태를 정반대의 개념인 과학적 이상과 직감적 사랑으로 이겨내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조셉은 머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우주를 향한 항해를 떠나게 되고, 그렇게 머피 부녀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 파묻히게 된다.


영화는 타임라인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 초반부터 등장한 머피의 방의 유령은 결국 아빠(조셉)였고, 아빠는 과거의 딸에게 과학의 신호를 보냄과 함께 아빠를 끝까지 못가게 잡아달라는 사랑의 절박함을 표현하고자 스스로 유령이 되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사랑이야, 타스. 브랜드가 옳았어. 머피에 대한 나의 사랑. 그게 열쇠야.”


조셉은 블랙홀 속으로 빠져 들어가 시공간이 모여있는 우주의 공간 속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과학의 키(key)를 전함과 동시에, S.T.A.Y라는 모스부호를 통해 지구의 시간으로 23년만에 머피에게 나타난다. 인류를 구하는 방법이 바로 ‘부성애’를 바탕으로 한 '기다림과 나아감'이었음을 조셉의 대사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항성 간의 몇 억광년이 떨어진 그 별들(Interstellar)을 잇는 힘의 근원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의 애틋함 이었던 것이다.


2. 사랑의 직감으로 택하다.


아멜리아 브랜드는 쿠퍼와 함께 우주로 간 탐사대의 대장이자 생물학자이다. 인듀어런스 호에 복귀하여 향후 항로에 대해 논의할 때, 연인인 에드먼즈가 가 있는 에드먼즈 행성에 갈 것을 주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이는 쿠퍼의 생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는 못하지만 믿어보기는 하자구요.”


영화의 엔딩을 통해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사랑을 믿었던 감정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한 선원의 직감과 느낌만으로 몇십년이 걸린 항해를 덜컥 결정해버리는 행위는 오만한 태도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 맥락에서 봤을 땐, 브랜드의 대사는 <인터스텔라>의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로 보인다. 또한 브랜드가 연인 에드먼즈가 있는 행성에 가 혼자 살고 있는 모습을 결말로 배치함으로써, 끝까지 관객들에게 ‘사랑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고자 한 놀란 감독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3. 감정의 동물, 인간


인터스텔라는 메인 캐릭터들 사이의 사랑과 연대를 그려냈다는 점 뿐 아니라, 더욱 넓은 스펙트럼의 감성을 그려내고자 했단 점도 또하나의 특징이다.



우선 첫번째로 주목해볼 만 한 유형은 ‘학문에 대한 사랑’이다. 존 박사와 그의 제자 머피 쿠퍼는 런닝타임 내내 과학이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세상을 구할 공식을 이끌어내고자 공부하고, 토론한다. 학문의 본질을 통해 맹목적인 당위성을 좇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꺼져가는 빛에 대해 포효하고 분노해내는 빛 줄기로써, 영화의 주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구체적 장치라 보인다.



두번째로 살펴볼 유형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비열해지기도 하는 존재의 양상’이다. 극 중에서 존 박사는 NASA의 연구책임자로서, 멸망을 눈에 앞둔 지구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계획된 나사로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과학자이다. 예전에 쿠퍼가 NASA에서 근무하던 시절 같이 일했으며 본인의 두 가지 계획(현 모든 인류의 타 행성으로의 이주를 계획한 플랜 A와, 배양 세포를 옮겨 적절한 행성에서 소수의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는 플랜 B) 중 플랜 A를 우선시한다고 주인공을 거짓으로 설득하여 자신의 딸(아멜리아 브랜드)과 과학자들, 쿠퍼를 우주로 보낸다. 존 박사는 애초부터 본인이 세운 2가지 계획 중 플랜 A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능하다는 거짓말을 통해 배출된 희망으로 조셉을 회유하여 쿠퍼 부녀를 헤어지게 만들었다. 죽기 직전에 머피에게 “희망을 갖자.”라는 말을 했지만 이가 거짓이었다고 고백하고 죽는다. 이 후, 머피는 아빠에 대한 배신감을 더 깊게 느끼게 되고 브랜드 부녀를 증오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유레카!”


존 박사 뿐 아니라, 만 박사 또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비열해지기도 하는 존재의 양상을 극렬히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만 박사는 자신이 온 행성이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지 않기 위해 브랜드의 팀에게 거짓으로 “적합한 행성을 발견했다.”고 신호를 보냈다. 브랜드 팀이 도착하자, 폭력과 사기를 이용해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레인저 호를 탈취해 인듀어런스 호를 차지하기 위해 이륙한다. 하지만 존 박사와 만 박사는 악역이라고 쉽게 치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들은 삶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그려낸 치열한 인물들에 가깝다. <인터스텔라>는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려냄으로써 내러티브적 효과를 추가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영화에 ‘비열함’이란 대비적 감정을 등장시켜, 인간의 나약함과 생존에 대한 열망이란 깊은 메세지를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단지 눈 앞의 일만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지 않았던 그들, 그 크고 작은 영웅들은 결국 감독의 깊은 감정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배경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과학은 사랑과 동일시 되었으며 이용하는 도구가 아닌 미학적 순수 그 자체였다. 샘솟는 생(生)에 대한 열망 속에서 마음이 이끄는 곳이 그들의 목적지였으며 인류를 위한 희망의 행성으로 완성되었다.


즉, 인터스텔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아가페적 사랑은 의도된 것 아니라, 우주를 가득채우고 있는 모든 것의 환원(還元)이자 각 인간을 이어주는 진정한 항성 간의 이동이었다.


이 글은 절대 이과생들은 사랑에 대해 생각할지 모르고, 문과생들은 우주 법칙을 파악할 수 없다는, 소위 말하는 표면적 글이 절대 아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할 때 갖출 수 있는 발전적 양상의 방향을 제시하는 글이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문과와 이과를 정확하게 흑백으로 나누어 분야를 정하게 하는 국가이다. 이러한 국가적 관념은 그대로 국민성으로 흡수되어 수많은 관객들이 표피적 소재만으로 영화를 양분화하여 살펴보게 만들었으며, 영화를 바라보는 스펙트럼 또한 좁히고 말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했으니(<인터스텔라>) 이과 영화, 교육과 문학을 소재로 했으니(<죽은 시인의 사회>) 문과 영화!라 단정짓는 흑백논리와, 이러한 논리에 대한 어떠한 의심의 여지 없이 그대로 적어놓은 듯한 한 줄 코멘트들은 앞으로 관객들이 더 많은 명작들을 마주하기 전, 지양해야 할 하나의 영화사적 변곡점이라 생각된다.


계속해서 마주할 변곡점들이 마침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 될 때, 인터스텔라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롯이 빛나던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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