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 에디터 Feb 04. 2020

<작은 아씨들> : 쇼펜하우어가 말한 생(生)의 의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레타 거윅은 할리우드의 next generation을 이끌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지난 2018년,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출한 <레이디 버드>(Lady Bird)에서 평범했지만 알고 보니 가장 특별했던 소녀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내는 데 성공해,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수상까지 하는 등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두 번째 작품인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4명의 자매와 그를 둘러싼 사랑과 일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에선 2020년 2월 12일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작은 아씨들>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단순한 동화 같지만, 어떠한 영화보다도 단단한 내면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이 작품에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단단한 감정의 전선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 점에 착안하여 <작은 아씨들>이 우리 인생을 조금 더 동적이고 아름답게 바꿔줄 수 있는 '단단한 요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뤄보려고 한다.


1. 쇼펜하우어의 생(生)의 의지


<작은 아씨들>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에서 예술과 도덕을 통해 해방되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생의 의지'라는 개념을 관통하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철학에서 밝힌 용어로 유명한 생(生)의 의지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려는 '맹목적인 의지'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는 욕망으로 채워져 있는 이 갑갑한 의지는 절대 채워지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만큼 인간은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극 중 둘째 조는 가난과 성별이란 사회적 번뇌와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시련을 '작은 아씨들'이란 소설을 완성해냄으로써 예술적 해탈을 하고 있으며, 막내 에이미는 주체할 수 없는 탐욕과 질투를 결국 가족이란 도덕적 해탈로써 벗어나고 있다. 특히 에이미의 도덕적 해탈에서, '도덕'이란 타인의 고통을 함께하고 공감한다는 뜻으로 자신밖에 모르고 성공의 열쇠를 갖고자 거짓 결혼까지 꿈꾸던 그녀는 꿈을 택하라는 로리의 진심 어린 부탁을 계기로 타인의 고통과 공감을 함께하게 되면서 진정한 가족 구성원 중의 한 명이 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쇼펜하우어의 사상 중 핵심은 윤리학을 철학의 기준으로 뒀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조에게서 많이 보이는데, 삶의 이유였던 원고를 막내 에이미가 다툼 후 홧김에 불태워버리자 이에 분노하다가도, 동정심을 이기지 못해 동생을 용서하고 다시 가정의 화목을 추구하는 자세를 보인다. 또한 파병 나간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돈이 없어 교통편을 구하지 못하자 책임감과 연민으로 머리를 모조리 잘라 보이는 태도 또한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도덕적 측면에서만 판단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남성의 것으로 치부되던 '거침없는 행동'을 조라는 여성 배역이 행했다는 점에서 젠더적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성보다는 인간만이 가진 의지와 그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추구했던 쇼펜하우어와 완벽해지지 않는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한 불평과 좌절을 '예술과 진정한 연민'으로 이겨낸 조와 에이미의 마지막 모습은 어딘가 많이 닮아있다.

2. 눈부시게 발전한 여성 서사

<작은 아씨들>에게서 보이는 두 번째 단단한 내면은 또 하나의 여성영화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그레타 거윅은 이미 <레이디 버드>에서 엄마와 딸의 '지나가고 나니 보이는' 소중했던 관계에 대해 깊게 다룬 적 있다. 여기서 거윅은 고등학교 소녀들을 중점으로 세워 그들의 성장하는 자아 속에서 우리를 발견하도록 감정적 장치를 끌고 가는 입체적인 서사를 취했다. 이를 통해 여성 서사를 발견한 청중도 있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청중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은 아씨들>은 이전보다 여성 서사를 더 강하게 내세운 이야기로, 무려 4명의 자매들과 그들의 어머니까지 모습을 비추고 있다. 첫째는 배우를, 둘째를 작가를, 셋째는 음악을, 넷째는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설정으로 결국 이 설정은 예술계에서 '여류 작가'들은 이름도 걸지 못하고 무조건 결혼으로 점철되던 그때 그 시절의 사회적 장벽을 전하고자 했던 감독의 피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아씨들>은 구조적 압력을 이기지 못한 몇 명의 캐릭터를 보여줌과 동시에, 끝내 야망을 펼쳐내는 '조'라는 분신을 통해 장벽을 부수고 이를 교육으로써 이어가고자 하는 한 편의 여성 전기와 같은 마무리를 짓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거윅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여주인공(시얼샤 로넌)에게 소위 남자 이름 같다고 여겨지는 '조'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영화 속에서 멋지게 비추려고 했으며, 남주인공(티모시 샬라메)에게 여자 이름 같다고 여겨지는 '로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쁘게 담아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감독이 연출한 전복된 성별의 기능은 현재 영화계가 추구하고 있는 '젠더 장벽 부수기'의 흐름과 맞아떨어지는 문화적 흐름이기 이전에, 어찌 보면 당연했던 영화의 존재적 당위성이라고 보인다. 감독은 여성만을 내세우고자 한 것이 아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자라나고 길들여지고 반항하는 일련의 모습을 융화시키고자 했다고 말을 더하기도 했다.


여성들도 야망을 갖고 이를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감성과 이성을 조화시킬 수 있고, 결혼만을 위해 살지 않는 세계의 서사에서 그레타 거윅이 할리우드에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를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한 영화의 이러한 발칙한 고발은 다수의 여자 배역을 연출함으로써 숨겨져 있던 여성 배우들이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순기능으로까지 이어진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작은 아씨들>은 동화 같고 뻔해 보이는 구성 속에서 예술과 도덕으로 승화해 낸 생(生)의 의지와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여성 서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어떠한 영화보다 단단하고 올곧은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가진 강점은 캐릭터들 모두가 나 자신과 닮아있다 것이다.


첫째 메그가 보인 사랑에 목매는 순간, 둘째 조가 지닌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 셋째 베스의 따뜻함, 막내 에이미가 가진 스스로에 대한 욕심과 솔직함,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온 로리의 주변인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과 낭만을 좇는 모습까지.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마음속에 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도 결국 이들처럼 바보 같고 한심하게 흘러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간 하나의 빛나는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에.



#작은아씨들 #개봉 예정작 #개봉 #개봉작 #영화 개봉 #그레타 거윅 #여성영화 #여성 감독 #티모시 샬라메 #플로렌스 퓨 #시얼샤 로넌 #엠마왓슨 #메릴 스트립 #영화칼럼 #칼럼 #영화 #영화기사 #기사 #레이디버드






작가의 이전글 영화를 볼 때 마주하는 흑백 논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