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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Jan 15. 2022

몰라도 되는 젊음

나의 젊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몬트리올 호수 위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fleetwoodmac의 Rumours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사준 어줍잖은 밥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넓은 우리 집 아일랜드 식탁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일 년 전에 같이 잔 남자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새벽녘에 피는 담배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독일인 사장님이 뜨겁게 타 준 갓파더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물기 흐르는 색을 갈망함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흠모하던 M교수님이 엎어졌던 캠퍼스 복도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커피 한잔 마시러 구두를 신고 오르던 그 비탈길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오는 게 아니라면? 이미 가고 있는 거라면. 내 젊음은 떠나는 일밖에 없어. 맞이할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네. 언제든 보내야 하는 집나간 딸 같은 것이라면.


헤르메테경, 난 오늘 어디에도 가지 않겠네. 당신이 먼저 가 보게나. 내 어리석고 우매한 주인은 아직도 내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네. 불행하게도 나는 이미 내 주인을 닮아 얼굴에 습관이란 게 보이기 시작했네. 가버리는 뒷모습을 보고 다음에 올 걸 기대하는 일. 왜 갔는지 생각을 절어 버리는 일. 모두 내 습관이 되어버렸네. 당신 가고 나 가네. 먼저 가서 쉬고 있으세.


나의 젊음은 어디에서부터 가는가

서걱서걱 머리카락을 잘라 이를 전시하는 대학 동기들

꿈 속의 꿈 속의 꿈을 꾸는 나

시인을 한심하듯 쳐다보는 의자들

말 없는 밤의 그림자들 그리고 자위질

웃기고 싶어서 설왕설레하는 티비의 뱃고동 소리


이 모든 게 내 젊음이다. 아무렴 어때. 알고 나면 가고 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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