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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Dec 18. 2018

종이컵의 비극

종이컵 재활용 취재 노트

요 기사의 취재 노트랄까..?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용 플라스틱 잔에 종이컵을 겹쳐주는 걸 보고 시작된 종이컵 재활용 따라가기. 찾아보니 훨씬 더 큰 이야기 혹은 비극 같은 게 숨어 있었다.


 종이컵은 너무 슬퍼서 얼마나 만들어지는지 얼마나 쓰이는지 얼마나 버려지는지 통계도 없다. 만드는 회사가 너무 영세하고, 수많은 공장들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관련 통계를 내기도 힘든 상황. 그나마 있는 통계가 있는데, 종이컵에 사용하는 펄프의 수입량 - 수출량에 컵 하나에 들어가는 양 정도를 곱해서 계산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사용하는 종이컵은 230억 개. 국민을 5천만 명이라고 생각하면 대략 한 사람 당 일 년에 460개를 사용한다. 


 그런데 종이컵은 당연히 재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종이컵에 그려져 있던 재활용 마크를 언뜻 본 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다른 폐지와 함께 분리수거해서 폐기했는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정에서 버리는 종이컵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전국 통계를 보면 종이컵의 재활용률은 고작 1% 남짓 (2015년 기준, 자원순환사회연대). 종이컵의 비극이다.


 종이컵은 물을 담아야 해서 일반 종이보다 훨씬 좋은 고오오오급 펄프로 만든다. 두껍고 질긴 그런 종이 말이다. 그런 고급 종이에 플라스틱(PE)를 붙인다. 그러니까 뜨거운 커피를 담아도 새지 않는다. 편하고 저렴하지만 이 때문에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다른 폐지와 함께 재활용 공장에 가면 이 플라스틱은 펄프를 추출하지 못하고 공정 과정에서 모두 걸러진다고 한다. 폐지를 잘게 분쇄해서 펄프만 추출하는 게 재활용 공정인데 PE는 잘리지 않고 엉켜버리기 때문에 재활용 공정에서 모두 걸러져서 매립 혹은 태워서 버려진다.


 종이를 재활용하는 업체들은 종이컵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종이컵만 모아서 따로 버리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이컵은 원재료가 좋아서 다른 폐지로는 이른바 '똥종이'를 만드는데 종이컵으로는 화장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종이컵을 전문적으로 수거해서 화장지를 만드는 공장들이 전국에 몇 있다. 그래서 종이컵을 따로 모아서 버리기만 하면 재활용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재활용률이 1%밖에 안 되는 건 재활용 수거장에서 종이컵을 거를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재활용 수거장의 어려움은 보도가 많이 나와서 알 것 같다. 종이컵을 따로 분리해서 모아서 공장으로 보내는 데에는 인력이 필요한데 재활용 사업의 수익 구조 상 이를 할 수 있는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는 것. 다행히 정부에서 여러 해 전에 '자발적 협약'을 커피전문점 16개 브랜드, 패스트푸드점 5개 브랜드와 맺었다. 이 브랜드의 매장에서는 일회용 컵을 따로 모아서 수거해가고 있다. 이렇게 따로 수거된 일회용 컵만 현재 재활용되고 있고, 이게 전체 사용량의 1% 정도이다.


 가정에서 분리 배출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구청들과 시청에 문의하니 현재는 분리 배출을 하더라도 재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재활용 촉진을 위해서 일부 구청에서는 우유곽(우유곽도 종이컵과 같이 PE코팅이 되어 있어 같은 공정으로 처리된다)과 종이컵을 모아서 가져가면 종량제 봉투 등으로 교환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걸 다 모아서 가져갈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싶긴 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그러니까 현실 상 종이컵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따로 버려주는 게 전부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이제는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 현저하게 줄었다. 일회용 컵의 매장 내 사용을 금지한 후 종이컵 수거율이 90% 정도까지 줄었다고 한다. 일회용품 자체의 사용량을 줄이는 게 맞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 많은 테이크아웃 컵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묻히거나 태워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뿐. 다른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이 기사를 쓰고 난 후 종이컵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아 보려 노력했다. 텀블러를 습관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든 거 없는 가방에 텀블러 하나 넣으니 가방한테 조금 덜 미안하기도 했다.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이런 극단적인 결론은 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5년 정도 지나면 종이컵이 전부 어디선가 재활용되고, 나무도 좀 덜 잘려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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