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웃게 되는 나의 다섯 번째 이야기
오늘 구름의 모양은 어땠는지 아시나요?
마지막으로 본 꽃이 출퇴근길에 마주친 벚꽃은 아닌가요?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이 무슨 색깔인지 알고 계신가요?
나는 자연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푸른 하늘의 맑은 날은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았다. 울적하고 화가 나더라도 따스하고 밝은 날의 하얀 구름을 보고 있자면 어느샌가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길게 초록잎과 꽃, 하늘이라고 썼지만 결국, 자연 그 자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햇살을 맞이하는 초록이파리의 각도변화에 따른 반짝거림이 조금씩 다른 걸 발견했을 때,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로 세상을 예쁘게 물들이고 있는 꽃잎을 보면서 감탄할 때, 색깔은 없지만 온 세상을 밝혀주는 따뜻한 햇살이 어느새 내 등 뒤에서 나에게 힘을 실어줄 때.
바쁜 일상에 움츠리며 다니던 나를 잠시 세워 여유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만 아름다운 이 세상을 좀 보라고, 지금이 아니면 이 풍경은 다신 못 본다고.
이 순간의 바람에 나부끼는 여린 꽃잎은 어제와는 또 다른 나풀거림이라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23년 3월 30일 오후 6시의 저녁노을은 31일 오후 6시와는 또 다른 색일 거라고.
일주일 간격으로 꽃을 사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계기는 카네이션이었다. 우연히 카페에 갔는데 베이비핑크의 하늘하늘한 꽃이 너무 예뻐서 첫눈에 반했었다. 꽃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카네이션’이라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어버이날에 선물했던 빨간 존재로만 남아있었는데, 자세히 본 카네이션은 이렇게나 예쁜 꽃이었구나 하면서 신기했다. 인식조차 없이 늘 지나치기 바빴던 존재에서 차근차근 눈을 맞추며 내 마음속에 꽃으로 하나하나 담아두는 취미가 그때 생겼다. 꽃들에 대한 예의를 이제야 차리게 된 거다.
그 이후로 내 사진첩에는 꽃사진들로 가득하다. 길바닥이던, 다리 위던, 꽃가게의 꽃이던 한껏 애를 쓰고 있는 가녀린 모습을 쉽게 지나칠 수 없어서 늘 카메라를 들었다.
처음에는 혼자 간직하다가 나중에 친구들과 서로 공유도 했는데 각자의 시간과 여유가 묻어난 사진에 함께 웃었다.
사소하지만, 지금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이번에도 친구들과 꽃 사진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작년부터 시간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올해도 시간이 된다면 좀 더 촘촘히 다양한 꽃을 만나고 싶다.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 ‘이 계절에 이 꽃이 피는구나.’, ‘이 계절에도 피는 꽃이 있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확실한 건 시기가 다를 뿐 조금 늦어지더라도 꽃은 핀다는 거,
언제가 되었든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 순간의 주인공이라는 거다.
따뜻하고 향 좋은 차 한잔에 기분 좋은 햇살 아래 반짝이는 초록잎, 바람이 일으키는 숲의 속삭임, 그리고 푸른 하늘에 걸쳐있는 흰 구름까지.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잠깐 모든 걸 다 잊고 미소 짓게 된다.
몇 날 며칠 야근을 하면서 출퇴근할 때 만나는 하늘은 늘 어두웠다. 기분이 땅에 떨어진 걸 느낄 때면 괜스레 창밖을 한번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가 이 찰나의 ‘기분 챙김’조차 잊은 건 언제부터였나.
시간이 나면 잠시 가지는 게 여유가 아니라 굳이 시간을 내야 하는 게 여유라고 생각한다.
통장 잔고가 늘 빠듯하듯 내 시간도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커서를 잠시 멈추고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괜스레 한번 웃어본다. 아무래도 이번 글쓰기 주제 참 좋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