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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Apr 26. 2023

생각하는 건축가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신 분을 독서모임에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대부분의 독서모임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책을 혼자 읽는 것보다 같이 읽고 독후감을 쓰고 나누는 과정이 어쩌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을 주고서도 하지 못할 경험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짜로 어떤 것인지 실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하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경험이야말로 서로 단절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집이라는 사물이 철학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 혹은 편안함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게 됐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는 건축에 생각을 담기도 하고 편안함을 추구하기도 하는 드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삶과 자신의 건축을 돌아보면서 자서전 형식의 책을 출판한 것만 해도 건축가로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설계한 건축물 중에 큰 건물보다 좀 더 작은 건물에서 또렷한 색깔을 나타내는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에게 맞는 스케일의 건축에 적합한 것은 사람에 대한 철학과 그 사람을 위한 마음을 둘 다 담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증거겠죠.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재 양성에 대한 안도 다다오의 생각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중에 독립해서 건축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는 목표가 제가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과 일치했어요.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성공이 우연히 일본의 성장기와 같이 가면서 일본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던 안도 다다오의 글이 일본 전체를 조망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안도 다다오는 성공에 도취되기보다는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다가 좋은 건축물을 지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복서 출신으로 대학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독학으로 건축설계를 할 수 있었던 과정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어떤 분야든지 사회가 요구하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분야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가능성을 사회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네요.)


 건물을 짓는 작업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맞이하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아래 문장 때문인 거 같아요. 건물을 짓는 것은 어쩌면 익숙한 작업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안에서 뭔가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 힘들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지 책을 읽으면서 찾았어요.


역시 건물은 짓기보다 키우기가 더 어렵다. 키우려면 오랜 시간과 끈기 있게 계속할 의지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234


 아마 안도 다다오에게는 방치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건축을 독학하면서 세상을 살아내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얻게 된 답을 건축에 녹여낸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 콘크리트를 쓰는 의미를 예전에는 몰랐는데 누구나 쓸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는 것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어요.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정해진 문제와 해답을 연결하는 지식을 익히는 학교 수업과 세계를 자기 눈으로 보고 문제 자체를 찾아갈 수 있는 지혜를 키우는 방과 후의 자유로운 시간이 모두 있어야만 비로소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만드는 사람이 '이곳은 이렇게 사용하시오'라고 하나하나 결정해 버린다면 사용하는 사람은 상상력을 움직여서 활용하는 재미를 누릴 수 없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그렇게 스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치된 장소가 필요하다. 321


전통이란 눈에 보이는 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꼴을 지탱하는 정신이다. 나는 그 정신을 건져 올려 현대에 살리는 것이 참된 의미의 전통 계승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건축을 하고 있다. 376


분묘 높이는 자연 구릉이나 다름없지만 면적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능가하여 세계 최대의 구축물이 틀림없다. 382


 일본이 문화력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데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어요. 일본인도 아니고 일본에 살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일본은 문화력을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요즘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든 생각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여기에 적용될지 모르겠네요. 한 나라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때로는 한 개인에게 하기도 하죠. 그런데 전성기가 있다는 것은 가장 정점이 예전에 있었고 지금은 쇠퇴했다는 결과기도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전성기를 지나가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토도 좁고 자원도 빈약한 일본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 문화력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일본적 감성이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 남짓 지나는 가운데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하며 정신없이 일한 일본인은 물질적 경제적 풍요를 차지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대신 자연에 대한 경외, 사물 사이의 공백에 의미를 두는 '간'의 미학, 질서를 존중하는 예로부터 내려온 일본의 심정을 다 놓치고 말았다. 385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빛과 그늘. 이것이 건축 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배운 나 나름의 인생관이다.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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