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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May 10. 2023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게임

<존버씨의 죽음>을 읽고

 이 책에서 초반에 과로 죽음의 반복성은 특수한 현상이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특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했었나요. 지금 당장 해결의 실마리가 없다고 해서 눈과 귀를 닫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경쟁적인 성과 장치


 성과체제가 보편적이지 않고 서로를 과로 상태로 몰아넣는 주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마치 일본의 '배틀로얄'처럼 제로섬 게임에 참여한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생존하기 위한 절박한 상황이 타자의 고통이나 죽음에 침묵하게 되고 무관심을 만들어내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죠. 이 상황에서 스스로 '배틀로얄'에 참여하겠다고 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들먹이며 구조적인 문제의 책임을 벗어나 버립니다. 최근에 나온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에 있을 때도 경쟁적으로 야근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제는 퇴사한 지 꽤 오래됐으니까요. 그 이후에 보험회사에서 5년 동안 일했었는데 마찬가지로 이 책에 나오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성과위주의 경쟁체제로 온갖 편법이 성행하고 그것이 문제가 됐었습니다. 부동산에서도 꽤 오래 일하고 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경쟁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강요받으면서 '전세사기'라는 사회적인 현상까지 만들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단순히 경쟁적인 성과 장치가 한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고 생각해요. 아직 사회적인 문제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면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거예요. 이번 SG증권 사태로 주식시장 쪽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들고 돈 자체를 믿는 신흥종교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고통의 무게로 인한 고립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을 개인적 것과 구조적 것으로 나눠서 분석할 줄 알아야 하죠. 그런데 저는 이런 분석을 정규 교육과정 중에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삼성전자에 다닐 때 저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온전히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신입사원 이후로 2년 정도는 제 고통의 무게로 인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었습니다. 어떤 모임이나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하더라도 혹시나 내가 별로이고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어쩌지라는 감정이 가장 컸을 때거든요. 그만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불안에 고통받게 되면 고립되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입니다. 당연히 해결은 전혀 되지 않죠.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용기를 내서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연히 한 번에 해결되지 않았어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때까지 시행착오가 있었거든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을 회사 생활 중에 여러 번 경험하게 되면서 내가 뭔가 잘못 동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깨달음이 있기까지 아마도 5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적인 분위기와 그것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금의 여러 이름으로 변모하는 경쟁적인 성과 장치는 생존의 절박성만을 높이고 타자의 고통에 대해 침묵과 무관심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권리를 침해한다. 자살 감정이 양산되는 맥락이다. p.31
고용불안을 매개로 경쟁을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의 무게에 눌려 고립되고, 타자의 고통에 다다르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심지어 무감각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p.54

피해를 전가하는 불평등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할 때의 저는 불평등한 구조에서 취약 계층을 담당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불평등한 구조 때문이었고 가장 큰 피해는 취약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이고 물질적으로 보이는 취약함과 피해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피해가 때로는 더 크게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거죠. 제가 입사 5년 만에 가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던 그때 얼마나 처참하고 스스로를 혐오했었는지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사실 그 당시에 구조적으로 취약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지금 불평등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상황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오징어 게임'에서도 다 같이 게임을 중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한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고 이게 정답이라고 할만한 건 없겠지만 이 책을 읽고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하기 위해 한 발짝 다가간 거겠죠. 성과체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해결방법도 서서히 사회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때입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만들어진 원인과 결과가 있겠죠. 지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원인이 있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과연 결과가 예상대로 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인 또한 한 가지일 수 없기 때문에 복합적인 이유가 이 현상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가장 적절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 자신의 시야에만 포착되는 이유나 원인 요소뿐만 아니라 다른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원인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협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세상은 가까워진 만큼 복잡해졌습니다. 세상이 가까워지면서 개인적인 영역이 확보되었다면 이제는 사적인 영역 외에 세계와 맞닿은 부분의 표면적을 넓히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각자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제대로 가져봐야 한다는 거죠. 진부하고 시간도 꽤 오래 걸리는 해결방안일 수 있잖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가 된 지 불과 100년도 안된 것이 우리나라거든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그 변화를 보지 못할 수 있지만 지식과 사고의 축적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일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요. 결코 불가능한 해결방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글을 쓰는 일이 전혀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도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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