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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May 02. 2023

인생이라는 강

<깊은 강, 엔도 슈사쿠>를 읽고

 모두 각자 건너야 하는 강이 있습니다. 혹은 살아가는 내내 비슷한 속도로 흐르고 있는 강이 있을 수 있겠죠. <깊은 강>은 종교를 가지고 있건 가지고 있지 않든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비록 종교가 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굉장히 신실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미쓰코와 비슷하고 이소베처럼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뻔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누마다처럼 죽음의 고비까지는 아니지만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준 잊지 못할 기억이 있고요. 기구치처럼 처참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떤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힌두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깊은 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p.294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감정이입을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을 지탱해오고 나라 안 질서를 유지해주고 있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 수 있지만 종교가 상당부분 해주고 있잖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기독교도가 차지하는 비중에 유독 높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진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고 신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질문을 잘 던지고 있습니다.


양파로 비유된 사랑


도취될 수 없는 그녀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인가 싶었다. 하지만 사랑이란 뭘까. 오쓰는 양파란 무한한 부드러움과 사랑의 덩어리라고 했는데. p.100

현대 세계 속에서 가장 결여된 것은 사랑이며, 아무도 믿지 않는 게 사랑이고 비웃음당하고 있는게 사랑이므로, 하다못해 저라도 양파의 뒤를 우직하게 따라가고 싶습니다. p.179


 저자와 완전하게 같은 생각이라는 점에서 반가웠어요. 현대 세계 속에서 가장 결여된 것이 사랑이라고 저도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사랑을 양파에 비유한 것은 참 적절하고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전기가오리'를 통해 철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분류라고 하더군요. 선과 악을 가르고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 사랑이 존재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잖아요. 바로 그런 경계를 허무는 것이 '양파'더라고요. 양파는 겉과 안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보기 힘들어요. 한 겹을 까게 되면 이전에는 안이었다가 겉이 되어버리잖아요. 그렇게 계속 상황이 바뀜에 따라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겉과 안의 정의가 모호한 것이 사랑과 맞닿아 있어요.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 그러나 동양인인 저는 그들처럼 무엇이건 확실히 구별하거나 분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p.177-178

인도와 힌두교에 대해


 저자는 천주교를 믿으면서 오쓰를 통해 천주교를 드러냈다면 인도로 여행을 가서 힌두교를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나라에 대한 오해와 편견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완곡한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인도는 서양의 제국주의 시대 신민지 피해를 받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아시아는 유럽의 지배를 받는 기간 동안 착취당하고 그로 인해 국가의 분열이 가속화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이를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인디라 간디 수상의 비극적인 죽음도 있었고 그 이야기가 소설에 등장하는 것도 꽤나 여러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네루와 현재 인도의 여성 수상인 인디라 간디 수상의 왕복 서간을 읽어 보셨나요? ... 지금의 아시아는 유럽에 짓눌려 있지만 원래 아시아가 훨씬 앞서 있었다. 이를 회복하는 것이 인도인의 사명이라고. p.251


 인도가 식민지로 있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지점에 모여 나아간다는 점에서 종교의 역할은 긍정적입니다. 종교가 좀 더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마무리하고 싶네요.


우리들 일생에서는 무엇인가 끝났어도,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p.171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 "나갈 수 없습니다."하고 오쓰는 울먹이듯 말했다. "저는 예수에게 붙잡혔습니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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