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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Jun 08. 2023

컬트의 언어는 도처에 존재한다

<컬티시>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신이다'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봤었어요. 사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부터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형태의 종교를 믿게 되는지 궁금했어요. 보기 전에는 외롭고 소외되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이 종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큐를 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소속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서 이 책이 반가웠습니다. 많은 과정 중에 언어 측면을 강조해놓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어요.


대체 누구일까


 컬트적 집단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저는 천주교를 믿고 있는데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 소속감에 대한 욕구로 인해 종교를 가진다는 것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완벽한 집단은 있을 수 없지만 긴 시간을 통해 갈등과 위기를 경험하고 헤쳐나가면서 단단해진 결과로 신뢰받는 지금의 종교가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아래 문구처럼 컬트와 시간이 만나서 종교가 된 셈이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종교이긴 하지만 스스로 다가가야 한다는 허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때 찾아와 주는 컬트가 있다면 감정적으로 동요된 마음과 물리적으로 지쳐있는 몸을 의탁하게 되고 싶어질 것 같아요. 물론 처음 시작은 불안 때문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도한 낙관성을 가진 사람들이 착취적인 집단 구조에 적응한다는 의견에는 조금 동의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착취당한 경험이 없는 낙천적인 사람들은 의심하거나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이 힘든 것 같더라고요.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주식투자나 재테크 모임도 컬트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도한 낙관성이 있어야 올바르지 않은 목적으로 모임을 운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자기 자신은 그런 얕은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과도한 자신감일 수도 있고요.


 여기에서 소속감에 대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과정 중에 언어가 등장한다고 봅니다. 종교도 그렇고 특정 언어를 사용하면서 종교나 크로스핏을 하면서 연대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정체성과 목적,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이러한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문화적 공백기에는 항상 컬트적 집단이 등장해 왔다. p.42
종교학자 레자 아슬란의 저 유명한 말처럼, "종교학 연구에서 가장 우스운 점은 컬트+시간=종교라는 점이다." p.51
이처럼 사람들을 착취적인 집단으로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건 절박함이나 정신 질환이 아니라 과도한 낙관성이다. p.119

언어의 수행성 이론


 언어가 소속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맞지만 언어가 수행적 속성을 가졌다는 개념이 요즘에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컬트적 요소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아침에 웃으면서 시작한다던지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그런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던지 하는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듣고 있잖아요.


 언어의 중요성을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알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공기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숨 쉬는 것을 굳이 인식하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매번 하는 말을 신경 쓴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큽니다. 어느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지 문화적인 차이도 분명 존재하고 자신이 쓰는 언어뿐만 아니라 듣는 언어가 어떤지도 영향을 많이 미치죠. 예전에 저는 그렇게 크게 언어에 신경 쓰지 못했는데 이후 독서와 교육을 통해 언어의 중요성을 차츰 알아가고 있는 단계거든요. 다른 분들은 얼마나 언어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각 집단의 성격과 그 결과는 크게 달랐지만, 공동체와 연대감을 조성하고,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고, 공동의 가치를 확립하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데올로기와 두려움을 유발함으로써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이한 방식은 컬트적으로 흡사하다.... 사실, 모든 건 언어의 문제다. p.21
수행성 이론이라는 언어학 개념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히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묘사하거나 반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를 형성한다. p.62

적절한 경계심


 컬트적인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해결책은 이상적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일을 거부하는 것은 세상이 나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과도한 경계심은 인간을 망치기 때문에 적절한 경계심이라니 너무 이상적이잖아요. 여러 분야에서 적절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도 일과 생활의 적절함을 강조하는 단어인데 시간과 장소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경계심보다는 더 깊이 빠지지 않는다거나 얕게 알고 가는 식으로 각 분야나 생활별로 구분을 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크로스핏은 즐겁게 하지만 과도하게 빠져서 몸을 혹사시키거나 부상을 당할 정도로 매몰되지 않았거든요. 마찬가지로 천주교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분야는 큰 경계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나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시작할 때 넘어야 할 산이 좀 높지만 막상 넘고 나면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알아서 그럴 수도 있네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컬트가 중독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나름 중독을 조절해 보려고 노력해 봤고 시행착오가 있어서 그런지 컬트적인 요소가 저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는 거 같네요. 게임도 그렇고 크로스핏도 그렇고 다른 여러 가지에 중독될만한데 기간이나 시간을 정해놓고 원칙을 세우고 있거든요. 아무튼 컬트에 대해 무조건 경계심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조금 다른 단어로 얘기하자면 비판적인 사고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컬트의 영향에 대한 질문에 더 옳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옳은 질문을 해야 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들은 공동체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찾취하기 위해 어떤 기술을 쓰는가? 어떻게 그런 힘을 기르는가? p.24
소울사이클부터 인스타그램까지의 집단을 모두 컬트라고 명명하고 따라서 악하다고 비판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모두가 뭔가를 믿는 일이나 어딘가에 참여하는 일을 거부한다고 세상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도한 경계심은 인간으로 사는 삶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을 망쳐 버릴 수 있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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