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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Jun 16. 2023

자연 정복을 믿은 어리석음

<모비딕> <어둠의 심연>을 읽고

 우연히 <모비딕>과 <어둠의 심연>을 같은 기간에 읽게 됐어요. 덕분에 서구의 근대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이면을 보게 됐고 "남을 억압하는 자는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본 문구는 '정희진의 고전강의' 중 <어둠의 심연>과 관련된 근대성의 편집증과 분열증에 대한 강의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모비딕>은 상징적인 의미가 너무 가득해서 어떤 상징인지 전부 열거하기엔 지루해질 것 같아 아주 조금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꽤나 두껍고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라 감히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기 힘들지만 아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읽어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적어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보던 것이 가장 초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래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예전에는 정확한 정보가 없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아름다움을 신화의 형태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게 됐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게 되었고 자연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 곳에 서구가 저지른 일은 지금 누구도 사과하거나 잘못된 행동으로 규탄받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서구의 근대화를 시작으로 자연을 착취하고 식민지를 착취하는 형태가 삶을 영위하는 기본 태도가 됐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겠죠. 지금은 너무 일상이 되어 착취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웅덩이에는 마력이 있다. 가장 얼빠진 사람을 가장 깊은 몽상 상태에 빠뜨린 다음,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게 해 보라. 그 지역에 물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물이 있는 쪽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p.32

<모비딕> 중에서

자연을 정복하려는 대상으로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도 했었던 거죠. 당연히 정복되어야 했는데 정복되지 않으니 분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고래는 분풀이의 대상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죽여야 하는 존재인데 사실 고래를 죽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책의 여러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자신이 정복자인데 그것을 애써 외면한 채 누구인지 알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야만'과 비극이 시작된 것 같아요. 산업혁명 이후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돈이라는 새로운 신이 생겨버리고 난 후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자본주의의 논리가 세상을 정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논리가 고래를 자세히 공부하고 고래를 잡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 밧줄부터 고래 종류 구분까지 나름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하지만 결국 고래를 잡기는커녕 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두가 죽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지 엄청나게 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둠의 심연>에서도 자연이나 식민지를 '나의'라는 표현을 써서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근대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제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그는 커다란 고래야말로 자신의 원수, 조상 대대의 원수라고 생각하여, 고래를 만날 때마다 죽이는 것은 그에게 명예가 걸려 있는 일종의 체면 문제였다. p.164

<모비딕> 중에서
'나의 약혼자, 나의 상아, 나의 교역소, 나의 강, 나의 - ' p.106

<어둠의 심연> 중에서

과연 무엇이 문명과 야만을 정의하는가

 

 인상적인 인물은 단연 퀴퀘그였습니다. 근대의 피해자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도교라고 혹은 식인을 한다고 손가락질받지만 가장 뛰어난 선원은 역시 퀴퀘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슈테고가 고래 머릿속에 빠졌을 때 구해내기도 했잖아요. 이분법적으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경계를 저자는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타슈테고가 고래 머릿속에서 죽었다면 그것은 매우 귀중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꿀이 가득 든 플라톤의 머리에 빠져 거기서 감미롭게 죽어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p.423

 <모비딕> 중에서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사에서도 지도자가 모르는 사이에 일반대중이 지도자를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p.36 <모비딕> 중에서


마침내 새그항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선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목격하고, 또 낸터컷으로 가서 '그곳'에서도 선원들이 급료를 어떻게 쓰는지 보았을 때, 퀴퀘그는 가엾게도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는 자오선과 관계없이 어디나 사악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이교도로 살다 죽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p.95 <모비딕> 중에서


감미로운 것, 명예로운 것, 숭고한 것과 관련된 것들을 이렇게 모두 모아보아도 이 흰색의 가장 깊숙한 개념 속에는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숨어 있어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핏빛보다 더 많은 공포를 우리 영혼에 불러일으킨다. 흰색이 좀 더 기분 좋은 연상에서 분리되어 본질적으로 무서운 것과 결합했을 때, 흰색을 생각만 해도 그 공포가 극한까지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 포착하기 어려운 성질 때문이다. 북극의 흰곰과 열대지방의 백상아리를 보라. p.248 <모비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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