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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Jun 27. 2023

지도자와 같이 성장한 독일 국민

<메르켈 리더십>을 읽고

 독일문학을 읽고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이 궁금해서 독일 총리들에 대한 책을 읽었거든요. 그때의 궁금증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해소됐습니다. 궁금증의 큰 범주를 이야기해 보자면 크게 지도자의 영향력이나 자질, 독일 국민의 수준, 언론의 성숙함으로 나눠볼 수 있겠네요.


지도자의 영향력이나 자질


 메르켈만이 가진 매력이 이 정도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특히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저랑 닮은 지점이 있어서인지 유독 눈길이 갔어요.

언젠가 평생의 롤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메르켈은 대답했다. "나 자신입니다. 되도록 자주 나 자신을 롤 모델로 삼습니다." p.36
"메르켈은 형용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죠. 세다가 그는 동료들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p.107


 저는 물리학은 아니지만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수학을 꽤나 좋아했었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때 배웠던 과학적인 사고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인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분야가 다르더라도 꽤나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과학적 사고방식이 활용될 가능성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던 시절 발전시킨 차분하고 분석적인 접근법 덕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통치를 바라보게 됐다. "어떤 상황을 고민할 때 결말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바람직한 결과부터 생각하고 역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내일 우리가 신문에서 읽을 내용이 아니라, 2년 후에 달성할 결과입니다." p.33


 권력이라는 단어를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 내리며 사용하고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자에 관심이 있어서 어떤 하나의 커뮤니티나 그룹을 책임지고 싶어 권력을 이용하거나 가지려고 했었습니다. 권력은 필요하다는데 동의합니다. 그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아이디어에 책임을 지고 싶어서 권력을 가지려고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권력(power) 그 자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필요합니다. 권력은 '만드는 것(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 적절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집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 권력의 반대말은 무력함(powerless)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실천에 옮길 수 없다면 그 아이디어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p.57


 회사에 다녔을 때 사내 오케스트라를 하게 됐었어요. 같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처음 알게 된 후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공연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결국 오케스트라 단장을 하게 됐고 5년 동안 공연뿐만이 아니라 동호회가 공고히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의 단정을 했던 경험으로 권력에 대해 직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국민의 수준


 좋은 지도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집단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독일이 궁금했던 이유가 독일 국민이 뽑은 존경할만한 인물 100명 중에 지금까지의 총리가 모두 순위에 들어간다고 해서였거든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100명 중에 정말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현상은 통치권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국민의 문제라고도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말이죠.


 제가 기억하는 메르켈의 업적은 '난민수용'이었습니다. 결정은 메르켈이 했지만 실행은 독일 국민이 했었죠. 만약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는데 상상하기가 싫더라고요.


성숙한 언론


 히틀러의 나치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괴벨스의 프로파간다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 언론 플레이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겠죠. 괴벨스를 가장 잘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단연 러시아라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무기화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불화의 씨앗을 뿌리려는 러시아의 저비용 테크닉 중 하나였다. p.270


 메르켈은 동독에서 생활했던 만큼 러시아 푸틴의 전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어쩌면 긴 기간 총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아무리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도 그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잖아요. 원래 언론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메르켈의 매력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네요. 메르켈의 끊임없는 지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독서가 인상적이었거든요.

메르켈에게 최근 쓰라린 경제경보를 울린 것은 독일 사학자 헤르프리트 뮝클러가 내놓은 1000페이지 가까운 책이었다. 그가 미친 듯이 탐독한 이 노작은 결국에는 스페인부터 스웨덴까지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집어삼킨, 대륙의 인명을 대량으로 앗아간 흉포한 17세기의 전쟁을 재구성한다. 메르켈은 저자를 총리실로 초빙했고, 그와 사학자는 두 시간 동안 1555년에 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종전시킨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체결되고 70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 전쟁이 다시 커지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화가 70년간 이어진 후, 앞서 벌어진 전쟁의 잔혹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생존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유럽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흉포한 또 다른 전쟁에 맹목적으로 빠져들었다. p.341

(결국 30년 전쟁이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빌려서 보게 됐습니다)

 

 독일 국민과 마찬가지로 독일 언론 또한 위대한 지도자의 파트너답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아직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나라도 성숙한 국민이 많아지길 바라게 되네요.

"우리는 총리의 건강이 직무 수행을 막지 않는 한 그 문제를 취재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명백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총리의 개인적인 문제로 봅니다." 이 불안정한 신세계에서, 총리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겠다는 언론의 이 집단적인 결정은 참으로 진기해 보인다.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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