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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Mar 17. 2024

웰니스 말고 책 읽기

호텔, 웰니스, 공간에 대한 3권의 책을 읽고

 '조용한 생활'이라는 팟캐스트 매거진을 듣는데 한이경 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재밌다고 생각되는 주제가 생기면 한 번에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을 읽곤 합니다. 이번에는 <호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시작으로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인 <웰니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읽고 공간과 건축 잡지로 브리크를 자주 보는데 주제가 웰니스라 <브리크 vol14. 웰니스 라이프스타일>를 같이 읽었습니다.


 웰니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연달아 읽다 보니 지나다니면서 웰니스 전시도 눈에 띄고 서점에서 책도 간간이 보이더라고요. 과연 웰니스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토마스 쿤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처음 이야기했을 때 정상과학이 사회적으로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아직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질 호텔에 대한 기준도 낮다고 생각됩니다. 브리크 매거진에서도 지역에 괜찮은 호텔을 공급하려면 운영 시스템과 예약망을 배워와야 한다고 하신 것처럼 말이죠.


지역에 괜찮은 호텔을 공급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새로운 브랜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운영 시스템과 예약망을 배워와야 해요. p.130

 <브리크 vol14.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예전 삼성전자를 다녔을 때 운영 시스템과 업무 방식을 배운 것이 저에게 큰 자산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서도 어떤 절차를 거쳐 호텔이 만들어지고 호텔을 운영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상세하게 적힌 걸 보고 마치 제품개발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실제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해서 양산하는 과정이 정말 똑 닮아있어요. 이후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하며 많은 분야에 운영 시스템이나 업무 방식이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곳에 격차가 존재하는데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기 때문에 격차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물며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방식인데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웰니스가 유행을 타고 좋은 삶을 사는데 효과가 좋은 것처럼 광고가 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적절하면서 실제로도 긴 기간 지속할 수 있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브리크에서 초반에 땅을 훼손하지 않고 흐름대로(p.8) 집을 짓고 사는 여행자가 나옵니다. 북유럽에서도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땅에서 조금 높여 집을 짓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브리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해 주기 때문이거든요. 다양한 시각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어쩌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려면 지금 주거형태도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네트워크도 주거에 중요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율성에 커뮤니티를 운영하는데 기대고 있다고 하는 대목에서(p.16) 아직 우리에게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마다 역사가 상이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다고 무작정 들여오는 것은 많은 조건을 납작하게 만들고 그들과 우리가 유사하다고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특성에 맞게 접목시켜야 하는데 특성 파악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벤치마킹만 하다 보니 우리의 특성을 살린 주거형태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요즘에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화두라고 이야기하는데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책 이야기를 하며 웰니스만이 답이라기보다 삶을 이해하고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한데 그것을 쉽고 빠르게 해결하려다 보니 더 문제가 증폭되거나 가중되는 것 아닐까 한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요즘 세상을 빗대어 'VUCA월드'라고 말해요. 이는 Volatility(불안정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성)의 약자입니다. 팬데믹 이후에 이러한 현상들이 더 짙게 관찰됐고,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찾으시는 분들이 폭증했어요. p.111

<브리크 vol14.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세상 끝의 버섯>이라는 책에서는 불안정성이나 불확정성이 우리 시대의 조건이 아닐까 하고 화두를 던집니다. 우리는 대부분 진보와 근대화를 세계나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대입니다.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달랐었죠. 세상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온전히 개인의 탓일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구조적인 측면 모두 생각해봐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그것을 개인에게만 맡겨왔습니다. 호캉스라 불리는 라이프 스타일이 인기가 있는 것도 개인이 힐링이나 리프레쉬를 통해 삶을 살아가고 웰니스 또한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측면을 지금까지 돌아봤다면 사회구조적인 것에도 관심을 가져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서예요. 20세기 세계대전의 단초가 되었던 여러 사회현상을 외면하고 고급 요양원에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삶만 돌봤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조금 길게 써봤네요.


대체로 우리는 이런 불안적성을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예외적 상황이라 여긴다. 불안정성은 체계에서 '예외'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불안정성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조건이라면 어떨까? 아니, 달리 말해서 우리 시대가 불안정성을 인지할 단계에 이른 것이라면 어떨까?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또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무언가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체계성의 중심을 이루는 것들이라면?
불안정성은 타자들에게 취약한 상태를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은 우리를 변모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다. p.51...
우리의 생존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방식의 사회 분석이 가능하다. 불안정한 세계는 목적론이 없는 세계다. 시간 본연의 무계획성을 뜻하는 불확정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불안정성을 놓고 생각해 보면 불확정성도 삶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 이 모든 얘기가 이상하게 들린다면, 그건 순전히 우리 대부분이 진보와 근대화를 꿈꾸도록 길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틀에서 미래로 이어질지 모를, 진보 및 근대화와 관련된 현재의 일부가 선별되고, 나머지는 역사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p.52

<세상 끝의 버섯>

추가로.. 웰니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읽고 썼던 원본 독후감을 지우기 아까워 붙여봅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마의 산>은 마치 고요한 산속에서 탁상공론처럼 이루어진 지식인들의 대화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 마지막에 전쟁터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 소설이 떠난 이유는 과연 웰니스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자문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를 부정한다기보다 질문이 생긴다는 거죠.


본연의 나로 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이루는 거대한 시스템의 흐름과 조화롭게 호흡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특권을 마음 가는 대로 누리는 것이다. p.200

<웰니스에 대한 거의 모든 것>


 본연의 나로 살아가기 위해 웰니스가 도구가 되는 것은 긍정적인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거대한 시스템의 정체를 모른 채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어 현실을 살아가라는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와 별다를 바 없을 수 있습니다. 과연 현실을 파악하면서 본연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웰니스를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계층이 나뉘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웰니스라는 도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면 모두에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네요. 마치 철기 시대에 철이 누구에게나 필요했지만 권력을 지닌 사람들만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죠.


지혜의 산물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에 대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고, p.150

<웰니스에 대한 거의 모든 것>


 호텔 후방 공간은 그러나 썩 근사하지만은 않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환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조차 안 되는 공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상은 이랬다....
2006년 미국 보스턴에서 일할 때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뉴욕의 '모건 스탠리'와 손을 잡고 호텔을 매입한 뒤 브랜드를 바꾸거나 확장 보수를 거친 뒤 몇 년 안에 다시 되팔아 수익을 만드는 곳이었다. 당시 미국 동부 서부 할 것 없이 수많은 호텔을 다녔고, 수없는 실사 작업에 참여했다. 그때마다 호텔 후방 공간을 살펴야 했다. 하나같이 열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들어갈 때마다 끔찍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중에 내가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이 공간만큼은 꼭 개선하겠다고 몇 번이나 혼자 다짐했다.
이런 다짐을 나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호텔 직원을 단지 피고용인으로만 바라보던 호텔업계의 인식이 점점 달라지더니 어느덧 호텔 내부 고객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퍼져나갔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호텔일수록 최상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최상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받은 고객들은 역시 재방문율이 높다. 즉, 직원의 만족도가 호텔의 수익에도 연결된다. 호텔 운영자들 역시 이 점을 깨달았다. p.331

<호텔에 대한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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