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이야기 Mar 26. 2024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나누어진 하늘>을 읽고

삶이란 느끼는 인간에겐 비극이며, 생각하는 인간에겐 희극입니다. -호러스 월폴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은 "삶이란 클로즈업을 하면 비극이요, 롱숏에 담으면 희극"이라고 했다. 결국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대상이나 상황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볼 여지가 더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채플린의 작품은 웃음만 짓다 끝나는 희극이 아니었다. 감독 채플린은 클로즈업과 롱숏을 오가는 가운데 비극과 희극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 나감으로써 한 스크린에 그 둘을 모두 담아냈다. 그리고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작업도 이와 비슷했다. 그는 열기구나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지구 곳곳의 모습을 찍었는데, 그가 찍은 사진은 지상에서 찍은 재난 현장 르포 사진도 아니고, 우주에서 찍은 푸른 구슬 같은 지구별 사진도 아닌 딱 중간 시점의 사진이었다. 그의 사진에선 멀리서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가까이서 바라보는 현실의 고통이 교차했다. p.59

<생각의 말들> 중에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개인의 일상을 비극으로 만들지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희극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책일까. 위 문장의 사진작가가 중간 시점의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이 끝나는 시점과 어쩌면 리타가 삶을 끝내려다 깨어나는 시작지점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비극과 희극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내고 있지 않은가. '나누어진 하늘'이라고 하지만 누가 보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나누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긍정하고 싶다. 단지 찰나의 인간 역사 중에 물리적으로 장벽을 세웠다고 해서 영원했던 적이 없었다.


 이번 소설은 특별히 시선이 가는 등장인물이 없었다. 그 와중에 존재감이 적었던 것에 비해 기억에 남는 말을 헤어푸르트 부인이 했다. 헤어푸르트 부인이 바로 채플린의 감독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여러 사건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특정한 사건에 반응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벤트란트가 새로운 공장장이 되었을 때(p.101~102) 직접 부딪치면서 배울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에게 닥친 무겁고 대치할 수 없는 상실 앞에 홀로 섰을 때만 가능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이 생각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p.228)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공산주의가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는 통찰력을 지닌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비극적인 분위기가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 이유로 작가가 유독 등장인물에 가까이 다가가 표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이란 클로즈업을 하면 비극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아니면 이미 역사적 사실을 알고 이 책을 봐서 그런지 리타가 요양원에서 시작하는 소설 초반 때문인지 확신이 없긴 하다. 그 외에도 소설 후반에 계속해서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된다.


 소설 후반에 들어서 어떤 뉴스가 습관의 가면을 그날의 얼굴에서 떼어낼 정도의 여파를(p.259) 미쳤다고 시작한다. 소련이 보스토크 1호 우주선을 발사해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인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p.269)에 대해 만프레드는 계속 말을 이어가는데 그 와중에서도 인류는 계속 살아간다는 표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바꾼 엄청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된 단지 한 줄의 기록일 뿐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 돌이켜보게 한다. 마지막에 '제아무리 휘황 찬란하게 비범한 인물들이 성층권을 누비고 있다 해도 이런 노고는 눈곱만큼도 나아지지 않지...'(p.269)라고 이야기하며 "역사의 앙금은 개인의 불행이지"라는 표현으로 쇄기를 박는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개인에게도 역사적인 사건이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듣다 보니 어설프게 알고 있는 발터 벤야민의 철학이 떠오른다.


 여기까지 독후감을 쓰다 보니 마치 비극으로 소설이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특히 하늘이 나누어진다는 표현으로(p.347) 불행이 필연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리타가 만프레드를 만나고 다시 동독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동독에 남았던 사람들을 긍정하며 나중에 독일이 통일을 이루게 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사 전반에 대한 이해와 독일 특성을 잘 모른다면 읽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문학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문화사를 알게 된 기분이다. 그 당시 거대한 역사 외에 사람들의 삶을 알기 위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써야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읽더라도 잘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특정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을 잘 그려낸 다른 소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지금 생각나는 건 <백 년의 고독>, <어둠의 심연>, <모비딕>, <안나 카레니나>, <분노의 포도>와 같은 책들인데 그렇다면 <나누어진 하늘>과 이 소설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새삼 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게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웰니스 말고 책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