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성공 기준과 신뢰 회복을 위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2011년부터 글이 올라와있다. 글 쓰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다. 기억은 어느덧 흐릿해져 결과물만 남아있어 아마도 엄청난 용기와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나는 생각하면 바로 하기 때문에 어떤 의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맥락상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동안 글쓰기 연습을 통해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가 목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내 생각을 정리해서 명확하고 뾰족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글을 쓰려면 어떤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써야 할지 먼저 정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지금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쉽게도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글이 따라잡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일 수도 있고 글로 표현하기에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내가 중심이 되어서 글의 소재를 선정했다면 앞으로는 조금 방향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새로운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있다. 지금까지는 그런 목소리를 조금 외면하고 살아왔다. 주목받는 것이 어색하고 그다지 엄청난 소재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엄청나다면 남들이 이야기하는 성공한 삶이어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성공의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관심 있고 원하는 일에 시간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맞다. 성공의 기준의 다양성을 위해 내가 나서야 한다면 선뜻 수락하고 싶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기준에 맞춰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다고 느껴졌으니까.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들에게 어쩌면 위안과 응원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주변의 목소리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들려온다.
예전에는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흔쾌히 들려줄 수 없었다. 마치 내 삶이 정답이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처럼 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데 있어 확신과 힘이 있을 때 아무리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있고 왠지 그것이 정답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거라는 생각을 이제는 지우기가 힘들다. 각자 들을 때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데 그런 태도를 가지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을 했던 거다.
최근에 있었던 모임에서 기자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가 독자의 안목을 믿어야 하는데 독자에 대한 기대가 떨어져 있는 것이 독자가 기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누가 먼저 믿기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저 누군가가 먼저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 존재할 뿐이다. 먼저 믿어주는 역할을 내가 해보고 싶다. 세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다양성에 기여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