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게임>을 읽고
중산층의 성장 신화는 20세기 후반기의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버팀목 중 하나였다. p.15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닥치자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아파트로 인해 허덕이는 하우스푸어'와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가 바로 그들이었다. p.15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피해를 복원하기 위한 고군분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1953년 GDP가 477억 원에서 2020년 1천893조 원으로 무려 3만 9천665배로 증가했다. 그동안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중산층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중산층은 전체 인구의 약 50%를 차지한다. 중산층은 평균 임금의 75%~200%를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한다. 중산층은 근대에 와서 생긴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강점기에 접어든 이후 해방을 맞이하면서 등장하게 됐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신분제도가 없어졌다고 계급이 아예 없어지긴 힘들었나 보다. 실제로 물질적인 부 또한 기존 부를 그대로 세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외에 평민 계급을 계승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는데 그들에게 나라를 유지할 여러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중산층이라는 계급은 우리나라를 성장하게 하는 동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 농민이 없었다면 나라가 유지되기 힘들었다. 그들 덕분에 그나마 많은 전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전란이 끝나고 난 뒤 공을 세운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저 자기만족이었다. 아니 오히려 농민의 일에 집중하지 못해 토지를 빼앗기는 경우가 더 많았을 수도 있겠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중산층은 토사구팽처럼 20세기 후반기의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2008년 이후 하우스푸어 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둘 중에 하나가 됐다.
아파트가 강요하는 삶의 기묘한 동일성,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주부들 간의 "고단하고 허망한 경쟁". p.25
일을 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수도권에 집 한 채 장만하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이룬다면 이후 삶은 평탄할 거란 한 가지 성공 신화가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에 가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높은 연봉을 받아 궁극적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해야 했다. 내 집 마련이 중산층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거다. 아파트가 생기면서 똑같은 구조, 비슷한 삶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더 생활이 획일화되었다.
1978년부터.. 신축 후 10년 정도 지나면 아파트 가격이 열 배 이상 뛰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p.34
1970년대 초반생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세대의 구성원 상당수가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한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p.54
중산층 신화를 가속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의 학습 효과였다.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파트 가격이 10년 정도 지나면 열 배 이상 뛰어버리는데 어느 누가 부동산을 등한시할 수 있었을까 싶다. 부동산 학습 효과는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외에도 그들의 자녀까지 학습하게 되는 효과를 낳게 됐다.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가족들의 대화에 숱하게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라 예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읽어보면 부동산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동산 투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아니나 다를까 신문 지상에는 내 집 마련이라는 서민의 꿈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는 기사들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p.38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부동산 열기가 한풀 꺾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였다. p.57
아파트의 하락세와 자영업의 위기. 그 사이에 똬리를 튼 이들 세대의 불행은 자녀 세대에게 고스란히 증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자녀 세대는 고스란히 증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자녀 세대는 자신의 마지막 희망, 그러니까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 한 채는 그래도 물려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빚더미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 대다수는 부동산 자산이라는 걸 가져본 적 없는 월세 인생들일 것이다. p.113
누군가는 이렇게 '사회'가 사라지고 '가족'만 남은 내 마음의 풍경을 두고 "사회적 생존의 공격적 형태"로서의 "속물주의"라고 명명하고 시비를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지적에 대해서라면 어느 좌파 성향 인문학자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응대하면 어떨까? 나는 '사회'를 '사회'로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사회'를 '사회'답게 만드는 집단적 경험조차 제대로 공유해 본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만일 내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티끌만큼이라도 연민의 감정을 가진다면, 그것은 유소년기에 접한 농경문화가 내게 심어준 도덕적 심성, 혹은 무지하고 가난했던 내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의 발로일 뿐이지,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는 삶의 태도", 혹은 사회가 사회의 노릇을 할 수 있을 때 그 구성원들이 지닐 법한 호혜와 연대 의식의 산물은 아니라고 말이다. p.194
부동산은 마치 영원히 상승할 것만 같았다. 내가 믿던 것에 대한 배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타격을 준다. 특히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재정적인 경우 그 피해는 더욱더 막심하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단편적인 문장으로만 나열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지경이다. 최근에는 가상 화폐가 사람들에게 안겨준 환상과 좌절이 언 듯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지만 부동산이라는 공고한 신화는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잠식해 왔다. 부동산 신화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아직 초반이다. 제대로 신화가 무너지지도 않았고 아직도 공고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부동산 신화에 배신당할 가능성은 크다. 배신당하기 전에 부동산 신화로부터 탈출 전략을 짜야할 시기다.
"가슴이 뜨거운 예술가와 지성인 들은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라고 말하기 좋아하지만, 천만의 말씀. 세상은 정치와 종교, 과학 기술과 경제가 바꾼다. 세상과 예술이 충돌했을 때, 바뀌는 쪽은 주로 예술이다. 고로 예술가들은 종종 선지자의 전략을 모방해 제 능력의 확장을 꾀한다. 지금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모방의 기술이지, 신성의 영역에서 제 이름을 삽입하는 데 성공한 초인의 삶이 아니다."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