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를 읽고
대한민국 역사를 뒤흔든 사건으로 선거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예전 암흑의 그림자가 가득 뒤덮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침 이 책을 읽는 와중이기도 했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불과 50년 전이라고 해도 그 당시를 겪어보지 않아 상황을 모르지만 책을 읽고 영상을 봤기에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과거를 경험한 사람이 없는데 암흑시대가 반복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상상이 현실이 됐다. 성인이 되어 공부하지 못하고 읽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내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을 하다니 분통이 터진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을 나는 믿는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이제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선거가 결국 한국 정치사를 조금씩 바꿨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궁금해졌다.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 중에 정보 비대칭의 문제,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부동산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상황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 구도 자체를 바꾸는 상황(김영삼)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어떤 특정 당 소속의 정치인이 당을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각 당이 외치는 슬로건의 차이점 또한 희석된 지 오래다. 공동의 적을 상대로 과격파와 온건파가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출전한 선수들은 죄다 부르주아 출신이라 각자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마치 조선시대 붕당 정치를 보는 형세다.
유권자는 덕분에 소속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왜냐면 그들이 속한 정당으로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당이 주는 정보는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권자는 알아야 할 정보는 많고 선택할 시간은 적고 정보는 비대칭이라 결국 습관처럼 이전에 선택했던 대로 선택하게 되거나 투표를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투표권을 외면하게 만드는 정치권이 변화해야 할 텐데 기존 방식 그대로 가는 것이 유리한 정치인이 많아 그것 또한 아직은 요원할 것 같다. 이번 사건처럼 큰일이 벌어져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의미 있다고 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부각되고 사라지지 않는 문제는 바로 부동산과 분단이 주제다. 역대 선거에서 분단국가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안보 문제는 계속해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전두환 대통령 당선 전 미얀마 대한항공 폭파에 대한 의혹, 김영삼과 김대중 대선 출마 때 '이선실 간첩단 사건'(p.248)이 그랬다.
지금까지도 오물 풍성 이슈 등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부동산이라는 주제가 가장 중요하고도 문제가 많다. 뉴타운 공약으로 2008년 지방선거를 이긴 한나라당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 얼마나 많은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얼마나 하락했는지를 봐도 알 수 있다. 부동산을 통해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 주택을 가진 사람들의 자산이 증가하고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 위에 서 있다. 과연 이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부동산에 의해 정권이 바뀌고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결과가 '계급 배반 성향' 투표라는 매우 예외적인 사실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p.386). 아직 서구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이후 트럼프가 당선됐던 배경에도 비슷한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셰게적인 현상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나 보다. 이번 계엄 선포도 어쩌면 비슷한 미래를 예측한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