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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루되어도 괜찮을 근육

<연루됨>을 읽고

by 태양이야기

'연루됨'은 기본적으로 '남이 저지른 범죄나 부정행위에 연관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한자어 連累 또는 緣累에서 유래했으며, 일본어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과학적 맥락에서는 연루됨이 단순히 범죄 연관성을 넘어 더 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이나 집단이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구조적 책임에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이는 과거의 폭력이나 불평등으로 형성된 제도와 구조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세대가 이러한 역사적 산물에 '연루'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 연루되었는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부동산이다. 어쩌면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주거영역부문에 연루되었다. 가난한 사람을 혐오하는 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거래를 통해 이익을 내고 컨설팅을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들과 연루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물질적 연루라고 이것을 부른다면 책에서 이야기한 실존의 빈곤에 대해서도 연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실존의 빈곤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전에 회사 다닐 때만 해도 '죽을힘'을 다해 경쟁해야 올라갈 수 있고 생존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데 동조했었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와서 실존의 빈곤과 투쟁하기 위한 10년을 보내고 있다. 좋은 실존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길 바라면서 여러 실험을 작게 해보고 있다. 과연 10년이 더 지나고 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기대된다.


어디까지 연루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도 예전에는 내 행동이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장담했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최근에 '콘클라베'를 보면서 확신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으며 다시 한번 확신을 경계하려는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나는 살아가면서 주변 모두에게 연루된다. 어디까지 연루될지는 상대방에 달렸다.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연루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얼마나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도 연루되는지 달라진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지해야 연루됨에 대해서도 똑같이 인지할 수 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게 어쩌면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과소평가하는 순간 자신의 행동이나 말의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게 매 순간 매번 연루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과소평가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세포를 조용히 생각해 봤다. 어느 하나가 삐끗하게 되면 그 영향이 엄청난 세포가 있다. 예를 들어 암세포의 경우 자기 스스로 정상 세포라고 생각하지만 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마치 박정희 정권 때 빈곤을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사회 구성원 습성 탓으로 돌리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p.303). 그렇지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후 바로 좋아지지 않지만 조치를 취하면 나아질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를 인용한 부분에서도 문화가 답보상태라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보이지 않고 수치화할 수 없는 변화를 믿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다릴 수 있는 근육을 키워할 때이지 않나 싶다. 물론 실천을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데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운동을 더하기로 했다.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위기의 순간마다 운동을 꽤 많이 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다시 깨달았다.


구조적 불평등이 똬리를 튼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을 혐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빈곤의 낙인화가 생산성을 최상의 가치로 받든 자본주의 세계의 당연한 귀결이라면, 이 세계의 다수는 사실상 연루자이고 공모자다. p.92
시장이 섭리고 경쟁이 본성이라는 믿음을 설파하는 게 자본주의 의식화라면, 나는 역사에서, 다른 장소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의식화에 여전히 눈길이 간다. 물질적 빈곤뿐 아니라 실존의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혼자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p.130
많은 청년은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살고 있다. 143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었던 나라가 서양 오랑캐에게 처참히 패배하고 불평등 조약을 맺었던 게 1842년의 일이다. 많은 중국인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사회주의 혁명보다 분열된 나라를 통일한 역사로 기념한다. p.150
권위주의국가는 물론 시민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주군 찾기를 계속된다. 추종자들은 포퓰리즘으로 비난받을수록 더 단결하고, 성과 속의 경계를 뭉개는 대신 선과 악의 구분은 강화한다. p.182
지금까지 10년간 환경과 평화를 주제로 시민 활동, 사회 활동을 해온 가운데, 생활 및 문화와 정치가 멀리 있음을 느꼈습니다. 본래 정치는 모두가 잘 살아가기 위한 도구와 같은 것입니다. 정치를 자기와 인연이 없는 것,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 잘 모르는 것으로 여기고 멀리 피하는 게 아니라, 정치를 시민의 손으로 되찾기 위해 생활과 관련된 친밀한 것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적극적으로 연결시켜 문화 그 자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이토 시정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pp.241-242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자신이 연구했던 원주민 사회를 현대사회와 구분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각각을 "정밀한 시계 같은 '차가운' 사회"와 "증기기관 같은 '뜨거운' 사회"라 이름 지었다. 많은 엔트로피를 만들어내는 '뜨거운' 사회는 사회갈등과 정치투쟁, 개인들 간의 심리적 다툼으로 지쳐간다. 무질서를 초래하지 않는 '차가운 ' 사회는 답보 상태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 문화가 정말 답보 상태여서가 아니라, 그런 발전선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 체계 용어로는 측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p.267
형제복지원 사건이 앞으로도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해 지그문트 바우만이 던진 통찰을 함께 떠올릴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진정 합리적인 고려에서 생겨났고, 자신의 형식과 목표에 충실한 관료 조직에 의해 생성되었다."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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