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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작용이 상실을 이겨낸다

<희랍어 시간>을 읽고

by 태양이야기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와 그녀로 등장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의 경험이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어떤 보편적인 경험을 말하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 봤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눈앞이 깜깜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도저히 어떤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됐을 때 쓰는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주 앞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앞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보는 것의 목적이 무엇일까. 위험을 감지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 않을까. 그가 눈이 보이지 않아 사고를 당하고 그녀가 구해주면서 보통의 사람들도 누군가의 도움이 살면서 당연히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상호작용을 바로 희랍어의 중간태를 통해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


희랍어에서 중간태

-분절이 없는 단어, 배우는 사람은 느리고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희랍어의 중간태는 주어가 동작의 주체이면서, 그 동작의 결과가 주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를 나타내는 독특한 문법적 태라는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전혀 몰랐다. 이런 언어가 있는지.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데 엄청나게 동의하게 됐다. 만약 희랍어를 알았더라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화 속에서 포착했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삶의 태도에 배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간태 외에도 분절이 없는 단어나 배우는 사람이 느리고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왠지 나와 닮았다는 느낌이다. 여러 자아가 공존하며 분절되어 있지 않고 언어에 대한 인지가 느리고 실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굳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한 지식을 책으로 배웠고 실천하는 중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중간태를 적용하고 싶은 문장은 '내가 책을 읽는다.'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나에게 영향을 줘 내가 변했고 그것이 다시 책을 읽는 행위에 영향을 준다.


그 외에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 체계적으로 느낀 점을 쓰기가 어려워 부득이하게 분절해서 써본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가장 먼저 감각되는 건 시간, 접촉하지 않는 시선

> 침묵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압도적인 무거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무거워진다. 이때 신체에 접촉하지 않는 시선은 나를 꽤 뚫어버릴 다른 도구 못지않게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왠지 이렇게 쓰다 보니 무섭기도 하네. 마치 무서운 영화를 떠올리고 있는 듯하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소름이 돋는 상황인가! 게다가 그 상황에 무서운 눈빛이나 눈빛만 나오게 되면 무슨 일이 바로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요. p.118

> 영화 '콘클라베'에서 적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증오라고 말하는 대목이 떠올랐다. 나의 어떤 상태는 유해하지 않다. 그 상태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 어쩌면 난 성당을 다니면서 그런 실천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 봐.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p.126


결국 우리는 상실을 침묵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와 그녀의 만남은 단절되어 있던 상실을 연결시키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줘 상실이 아니게 만드는 희랍어의 중간태 형태로 느껴진다.


<중동태의 세계>라는 책이 떠올랐다. 언어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궁금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작가가 한강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중간태적인 생활을 좋아한다고 느껴진다. 강물처럼 정해진 것 없이 흘러가는 식으로 어쩌면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길이라고 생각하기로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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