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환상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by 태양이야기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 유럽과 미국의 영사는 인간을 속박해 왔던 정치, 경제, 정신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이 중심이 되었다(p.19). 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에서는 또 다른 속박인 사회, 경제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자유'에 대한 논쟁은 이 책 말고도 여러 관점에서 꾸준히 논의되는 거대한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자유에 대한 정의부터 하고 넘어가야 한다. 자유라는 단어를 방패 삼아 행하거나 우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면밀하게 생각해 보면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할 여지는 충분하다.


자유의 의미가 자신을 독립된 별개의 존재로 자각하고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p.41)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또다시 추상적인 개념인 독립이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이후에 책에서도 언급했던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독립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유의 형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차이에 대해


'무엇을 위한 자유'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고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인 의미가 있다(p.49). 마치 지금의 최신 과학기술인 AI를 대하는 태도도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 소극적인 자유로 특정 책을 요약해 주길 바라며 책 읽기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과 자신의 요약 능력이나 시간 절감을 위한 자유로 사용하는 것과는 앞으로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보는데 나만 그럴까 싶다.


근대인의 한계


각기 독립적인 개체화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고독이 증가했다(p.46). 또한 온전히 개인으로 세계에 나가게 되면서 무력감과 불안감이 더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복종을 택하게 되어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개인이 경제적 성과를 이룰 가능성은 줄어들었다(p.138).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15-16세기에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 놀랍다. 직업 선택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할 수 있고 표현 또한 매체가 발달하면서 자유로워졌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경제적 자본이 주어진 사람들에게는 더 자유롭지만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선택에 제약을 받는 게 현실이다. 경제와 정치는 전보다 더 복잡하고 거대해진 반면, 개인이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전보다 줄어들었기 때문에 무력감이 더 가중됐다(p.145).


자유롭기 위한


복종을 피할 방법은 인간이나 자연과 자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p.47). 그렇지 않으면 파괴성이나 자동인형적 순응의 결과를 생긴다. 내 밖에 있는 세계를 파괴하면, 그 세계와 비교해 내가 무력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p.195). 지금 벌어지는 타인을 향한 혐오표현을 거침없이 내뱉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자동인형적 순응은 개인이 자신이기를 그만두며 외부 세계와의 차이가 사라지게 만들어 더 이상 외로움과 무력감을 두려워하지 않아 지는 현상을 말한다(p.202). 한 마디로 자아의 상실이다.


자유롭기 위한 시도나 노력은 말은 그럴듯하고 쉬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지 않고(p.210) 장려하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적어도 가정이나 사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유지한 경우에는 적극적 자유를 실천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적은 편이다.


더 어려운 건 경제적 안정이다. 나치즘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굴복했던 많은 사람들이 내적으로 피곤하고 체념한 상태(p.227)라고 말하는데 지금 경제적 안정을 이룩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1924년부터 1928년까지는 경제 사정이 나아졌고 하류 중산층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싹텄지만, 이때 얻은 수확은 1929년 이후의 불경기가 다 쓸어가 버렸다고 한다(p.232). 한국도 IMF가 중산층이 수확한걸 고스란히 없애버렸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주의라고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은 빈껍데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p.291).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 그 자아가 지닌 독특성에서 비롯된 목표를 표현하는 사회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이런 목표가 실제 살아남으려면 경제적 안정이 너무나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독특함이 용인되는 사회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내용은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현재 기본소득과 비슷한 형태의 경제적 안정이 1차적으로 이뤄져야 개인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제약이 없어지고 그런 사람이 늘어나야 사회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이 더 많이 제시되거나 실험될 수 있는 환경이나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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