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로 사는 서러움이란?
세입자라는 뜻은 돈을 내고 남의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네요. 특정 재화를 빌려 쓰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는 아마도 세입자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다른 단어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주 언급되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 단어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집주인이 하나이고 세입자만 있었다면 세입자라는 단어나 지위가 없었을 겁니다. 집주인이 있기에 세입자가 생겼습니다.
비슷하게 선생님과 학생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두 명을 데리고 온 점은 이해해주시길) 선생님에게 학생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학생이 없다면 선생님도 있을 수가 없죠. 마찬가지로 학생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세입자와 집주인은 어떤가요? 제가 이해하기론 집주인이 직접 그 집에 살지 않으면 세입자가 필요합니다. 세입자도 집주인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합니다. 서로 필요한 존재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사실은 누군가 씌워놓은 프레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정치라는 업은 매우 전문 역량을 필요로 한다. 정치는 매우 전문화된 형태의 직업으로 많은 경험을 쌓고 소통과 공감의 역량도 갖춰야 한다. 또한 정치에서 타협이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필수적인 요건이며 반대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도 갖춰야 한다.
이처럼 전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서 경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함으로 평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혐오가 불신에 기반하여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모두 나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은 선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는 오히려 무책임하고 나쁜 정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중에서
이분법적 사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누군가에 의해 한쪽은 선하고 다른 한쪽은 악하다는 의견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해서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입자를 약자로 전락시켜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그 사실을 홍보하고 그로 인해 당선이 되거나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이겠죠.
문제는 그런 정책이 실제로 세입자에게 도움이 되냐는 겁니다. 항상 어떤 정책이 나올 때마다 궁금하더라고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이유는 지금까지 의도적인 정책이 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이 없기 때문이겠죠. 약자를 위하는 포퓰리즘을 표방하며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할 뿐 실제로 세입자의 입장이 되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변을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약자 프레임은 세입자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면서 피해자가 되게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던지 그건 약해서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때로 실제 그런 일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데 피해자라는 생각에 노력하지 않는 겁니다.
영원히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지 않을까요? 세입자로 사는 서러움은 피해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계약을 할 때 공인중개사나 집주인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거나 서로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벽이 생깁니다.
결국 그 벽은 세입자 스스로 깨어버리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위치나 역할을 재정의해야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렵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단순하고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 진화론은 경쟁 사회관을 가리킨다. 이런 사회관에서 치열한 경쟁에 참여하라는 지상 명령은 사회가 자연을 모방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다윈의 주장대로 자연의 특징이 생존 경쟁이라면, 사회도 비슷한 구조로 돌아간다. 또한 사회에서 적자생존은 병약자를 골라내거나 경쟁 과정에서 약자를 도태시킴으로써 장려되어야 한다. 사회 진화론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아니면 이런 사회관은 어떻게 다윈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사상과 결부되었는가?
[예일대 지성사 강의] 중에서
집주인이라는 강자를 만들어내면 사회 구성원 누구나 강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게 됩니다. 위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적자생존을 말하기 위해 강자와 약자 프레임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강자의 지위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제시함으로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프레임을 만드는데 깔려있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강자의 지위를 이용해 부동산 시장을 존속시키는 행위 등 자본주의 특성상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우상향 하기 위한 방법은 그 시장에 더 많은 참가자를 모집하고 독려하는 것인데 지금 너무 잘 작동하고 있죠. 덕분에 낙오되는 사람들의 박탈감과 피해자 의식이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하게 교육이나 이런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조금씩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긴 하죠. 집단지성을 이용해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나름 길게 글을 써봤습니다.
본 글은 'alookso 얼룩소'라는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질문 중 하나인 '세입자로 사는 서러움이란?'을 보고 적었습니다. 좋은 질문에 목말라 계신 분이나 좋은 글과 의견을 접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