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이야기 Sep 17. 2022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어려움

<프로필 사회>를 읽고

 <프로필 사회>를 읽다 보니 최근에 봤던 전시와 책 몇 권이 생각나서 서로 연결고리가 떠올라 흥미로웠습니다. 책을 읽고 혼자서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니 2nd order라는 부분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졌던 분들이 많았더라고요. 저는 번역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접근해서인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듣고 보니 설득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프로필을 가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하지만 비판적으로 프로필에 대해 접근하고 자신에게 맞춰 적정지점을 찾아 프로필을 자신에게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프로필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지 프로필을 위해 사람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시점의 인기 있는 프로필, MBTI


 요즘 인기 있는 프로필은 MBTI라고 느껴집니다. 다들 처음 만난 사람의 MBTI를 추측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가지고 재미를 위해 성격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야기했던 것보다 지금의 MBTI는 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자신의 성격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조화에 대한 평가와 기존에 가진 특성으로 인한 한계를 규정지어 그 이상 넘어오는 것을 막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사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잖아요.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개인적인 성향이나 특성의 문제로 인해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문제를 단지 성격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문제를 쉽게 해석하고 해결하려고 생각하기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손쉬운 답을 쥐어주게 됩니다. 결국 표면적인 해석에 치중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막고 있지 않을까요.


<사람일까 상황일까> 책


 <사람일까 상황일까>라는 책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 태도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과학적으로 탐구하며 '상황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MBTI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정의가 빠진 질문들이 더러 있습니다. 잠시 판단을 멈추고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프로필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속도가 빠른 시대를 살다 보니 프로필이 보여주는 표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깊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게 되면 겉모습과 내면이 점점 일치하려는 경향을 띄도록 노력할 것 같아요. 아무도 감시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포장이 제일 중요하고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포장이 허구이고 알맹이가 중요하다는데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아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상적인 프로필 사회로 이동할 것 같아요. 물론 그때쯤 되면 다른 사회가 나타날 것 같긴 합니다.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전시


 프로필 사회를 읽다 보니 사람들을 자본주의 시장에서 하나의 무급노동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전시가 떠오릅니다. 바로 히토 슈타이얼의 '데이터의 바다'라는 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SNS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데이터가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거든요. 프로필의 속성에 대해 좀 더 다양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어요. 단지 누군가에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이용당하고 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책


진정성은 누구나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지위 재화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중에서

 진정성이나 프로필이나 자본주의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나 봅니다. 시간과 자본이 있어야 프로필도 관리할 수 있고 진정성도 보여줄 수 있다니 말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프로필을 관리하는데 당연히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보고 모방을 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한 부분이죠. 자기 자신을 가꾸고 운동을 하는 것처럼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프로필 뒤로 그 사람의 시간과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느끼지 않을까요? 프로필에 진정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시간과 내용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진정성과 마찬가지로 프로필도 누구나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지위 재화가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네요.


 추가로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의 결론 부분에서는 진정성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과연 좋은 해결책인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정답이 없어서 아직 고민하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라 끄적여봅니다.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모임 이후의 결론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프로필은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로필에 사로잡혔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신 분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자본주의에 의해 프로필이 돌아가지만 자본주의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되지 않을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희망적일까요? 저는 희망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수치심에 잡아먹힌 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