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를 읽고
시간에 대한 책 중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꼽는다면 단연 '모모'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상징하는 것을 천천히 살펴본다면 각자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 같아요.
시간을 관리하는 '미스터 호라'의 이름은 '초와 분과 시의 마스터'입니다. 실제 독일어 원문에서는 '마이스터 세쿤두스 미니티우스 호라(Meister Secundus Minutius Hora)라고 합니다. 독일어와 비슷한 한국어가 없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은 인물의 이름이지만 이렇게 독일어를 살펴보면 어떤 역할인지 알겠죠? 시간을 관리하는 역할이라면 대체 무엇이어야 할까요? 거의 마지막에 모모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죽음인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삶이란 죽음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처럼 죽음이 시간을 관리하게 되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죽음을 잊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끝을 바라보고 유한한 삶이라는 인식만 하게 된다면 결국 인생은 허무하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이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이 행복을 무한히 연장할 수 있는 힘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행복한 순간이 마치 느리게 연주하는 재즈처럼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도록 말이죠.
1시간 앞을 볼 수 있는 '카시오페이아'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먼저 그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작가의 이름이 '미하엘 엔데'잖아요. 맨 마지막에 카시오페이아 등 위로 끝이라는 글자가 나타나는데 독일어로 끝을 엔데라고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엔데라고 적고 각주를 달아 설명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작가가 자신을 카시오페이아에 대입해서 글을 썼다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이 책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1시간 후를 먼저 보는 자신이 전해주는 이야기라는 의미일 것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카시오페이아는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으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회색 신사의 말에 현혹되는 것 같거든요. 작가는 눈앞의 돈도 중요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잊힌 지 꽤나 오래됐다고 느껴집니다. <모모>가 쓰인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그렇죠. 요즘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던지고 어떤 답을 하는지에 따라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가늠합니다. 바로 '돈과 시간 중에 선택한다면?'이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선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선택에 맞춰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답보다는 행동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항상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워요. 현실적으로 돈이 있어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모모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느냐는 겁니다. 어느 정도 생활을 여유롭게 영위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유롭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무조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합니다.
돈이 많아지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다고 알고 있어요. 아래 문장도 그에 맞는 이야기라 인용해봅니다.
광물이 풍부한 나라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자원의 저주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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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많은 이가 영국이 런던과 비대한 금융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p.386
<부의 흑역사> 중에서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인을 대입해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개인에게 돈이라는 자원이 풍부하다면 돈의 저주가 나타납니다. 돈을 잃지 않으려고 더 집착하고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요.
축소분산 모형의 변종으로 비용과 자본 지출을 줄이고 그 결과 생겨난 현금을 회사가 기초사업에 투자하지 않고 주주에게 토해내게 한다. "단기투자 대 장기투자가 아닙니다. 이런 구분법은 틀립니다. 이는 가치창출 대 가치수탈입니다"라고 레이조닉은 말한다. p.397
<부의 흑역사> 중에서
투자의 관점과 가치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이번 책에서도 똑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간은 투자가 아니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재료라고 보고 싶어요.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자를 하는 건가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고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주객전도가 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과 만날 때 운명의 시간을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죠.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모모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나만의 언어, 운명의 시간을 알아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미래를 만들고 싶네요. 당장 눈앞의 이익이 굉장히 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현혹되지 않을 수 있어요.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모처럼 들으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가지 시간을 쓰는 방법을 고민하고 적용해보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호응이 높았던 것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바로 시간을 절약하고 서로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외주화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재능기부를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쇼핑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요. 그리고 잘하지도 못합니다. 시간은 쓰지만 효율이 좋지 않은 거죠. 물론 기분도 안 좋아져요. 옷은 사야 하는데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여도 결과가 형편없으니까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 옷을 잘 입고 잘 골라주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쇼핑 외에 많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하려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어요. 바로 자기 자신을 관찰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과연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는지 결과가 얼마나 별로인지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것이 생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관찰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기꺼이 해주면서 기뻐하는지 알아야 부탁을 하면서도 서로 좋은 일이 될 수 있겠죠.
여기까지 읽다 보면 혼자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 책에서처럼 때로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세상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모는 물론이고 모모의 친구들도 가져 본 적 없는 아주 값비싼 장난감도 있었다. 그런 장난감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p.102
회색 방문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조금 전 인형의 말을 듣고 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을 하는 목소리와 단어는 들었지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p.128
"이건 운명의 시간을 알려 주는 시계란다. 드물게 찾아오는 운명의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 주지. 이제 막 그 운명의 시간이 시작되었어." "운명의 시간이 뭔데요?" 모모가 묻자 호라 박사가 설명했다. "음,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이 있단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몰라.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 p.199-200
"별들이 들려 준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는 건 괜찮나요?" "괜찮지. 허나 해 줄 수 없을 게야." "왜요?" "그러려면 우선 네 안에서 표현할 말이 자라나야 한단다." "그래도 전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은걸요. 모두에게 말예요! 친구들 앞에서 제가 들었던 소리를 노래 불러 보고 싶어요. 그럼 모든 일이 다시 좋아질 거예요." "모모,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면 우선 기다릴 수 있어야 해." "기다리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아가,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야. 그래도 하겠니?" p.226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p.253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 p.328-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