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 같이 해요
편지를 쓰기 전에 저는, 편지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편지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일상의 각도를 바꿔놓고, 마음에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킵니다. 별일 없이 흘러가던 일상에 편지가 불쑥 끼어들면 그때부터 우리는 나에 대해, 편지를 보낸 사람에 대해, 또 세상에 대해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저는 어떻게 달라졌나 돌이켜봤어요. 어디서도 하지 않았던 저의 이야기를 조금 덜 어렵게 꺼내게 되었네요. 가장 달라진 건, 저와 이나 님과 다른 여성들과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예요. p.203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중에서
민혜 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서서히 변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말로 전달하려고 했고 실제로도 해봤는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서간문 형태의 책을 읽고 나서 알았습니다. 편지를 써야 하는구나라고요. 말도 충분히 좋지만 그저 귀를 스쳐 지나가는 기분 좋은 노래라고 느껴질 것 같아요. 정갈하게 정리된 문장으로 전달하면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편지를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실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예요. 좀 낯간지러울 수 있는데 자꾸 뭔가 떠오르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는데 민혜 님이 그중에 단연 빈도수가 높아요. 참지 못하고 전화한 적이 몇 번 있었죠. 그러다가 친해지게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제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우연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남기고 싶지 않고 필연으로 만들고 싶어 해요. 그래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다가가는 행동을 많이 하거든요. 다행히 그 행동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훗)
자연 발생만으로는 우연이 일어날 수 없으며, 우리가 그곳에 있기에 우연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자 끌어낼 용기를 품고, 우연을 필연으로서 받아들일 각오를 지닌 채 만났기 때문입니다. p.264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중에서
서간문 형태의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용기를 가지고 각오를 했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민혜 님이 한국을 잠시 떠나기 전에도 만났을 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었죠. 물론 지금도 같이 하는 모임이 있고 그 모임이 민혜 님이 있어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다만 아쉬운 점은 민혜 님이 빛나는 자리가 무엇일지 아직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런 일을 고민해보고 철학을 이야기해서 방향을 잡아나가고 싶어요. 이 편지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누군가 인연을 끊어버리기 전에 끝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 속에 우리의 편지와 앞으로 할 일이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요즘 제가 관심을 가지고 정리하고 있는 주제가 있어요. 바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이 영향을 주는지 세세하게 구분하는 일이에요. 부동산에 대한 긴 관찰을 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점점 커지고 있어서 어디 한쪽부터라도 정리를 해야 합니다. 사실 철학책을 같이 읽으면서 하다 보니 지금 제가 고민하는 부분을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먼저 고민도 했고 나름의 답도 찾아놓았더라고요. 하지만 현실에서 그 철학이 쓰이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도 철학이 너무 어려워서 손 놓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철학에 관심이 생기게 된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저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철학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민혜 님처럼 굉장히 특별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요ㅎ
저번에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천재에 대해 내린 결론이 있었어요. 천재란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세상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지만 희망 없이 말하고 싶지 않아요. 미래를 긍정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거든요.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물론 절망적인 결과로 향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이야기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에 절망적인 결과가 그려진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리고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민혜 님은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요즘 관심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세요.
희망 없이 말하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편이 낫다. 희망 없이 수다를 떠는 데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냉소주의자의 태도다. 다만, 희망을 낙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낙관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둘러싼 요인들로 미루어볼 때 얼마간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진단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이 낙관적이라거나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경제 전문가의 발언 따위를 떠올려 보라. 희망은 여건에 비추어 미래를 낙관하는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응시하는 일이다. 희망은 낙관이라는 타협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긍정하는 일이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그것들을 없애버리자고 요구하는 것이 희망이다. p.17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