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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Jan 01. 2023

'마의 산'이 필요하다

<마의 산, 토마스 만>을 읽고 / 을유문화사

 <마의 산>을 다 읽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칭찬해면서 포문을 열고 싶네요. 2022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자 마지막 북클럽 책이었어요. 다시 한번 북클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2023년을 맞이하네요. 혼자 읽으면 수박 겉핧기처럼 나만의 인식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무기력하고 풍요로운 삶


매일 흑맥주를 한 잔 가득 마셨다. p.63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떤 대상 때문에 힘들여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힘들까 봐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p.67
음악은 아침 식사 때의 흑맥주와 매우 비슷한 작용을 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고 신경을 마비시켜 멍한 기분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p.78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열이었다. p.527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어렸을 적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해서인지 삶에 어떤 애착이 느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집에 있을 때나 요양원에 있을 때나 아침에 마시는 흑맥주가 자주 나오길래 무슨 뜻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풍요롭고 안온한 삶을 보여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삶을 살아갈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으로 북클럽을 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종일관 몽롱한 형태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책 전반적인 분위기가 꿈속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대적으로 이 소설이 나타내는 배경이 1차 세계대전 직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물질이 넘치는 시대를 비판적인 사고 없이 받아들여 흥청망청 살았던 모습을 비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양원에서 먹는 음식의 양이나 아무 일 없이 요양원에서 7년을 보내는 것을 보았을 때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죠.


 어쩌면 무위도식하는 7년의 삶이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치열하게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게 될 때는 자신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힘들잖아요.


사랑 그리고 사람들, 시간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죽음을 많이 겪은 병약한 사람이 7년 동안 요양원에 살다가 전쟁에서 허무하게 죽은 이야기가 이 소설을 요약하는 한 문장일 수도 있어요. 반대로 7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죠. 특히 쇼사 부인을 향한 사랑을 통해서 예전 친구를 향한 사랑도 이야기하게 되고 말이에요. 소설 중간마다 등장하는 음악도 죽음과 사랑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국가를 나타내기도 하고 (이탈리아, 독일 등?) 철학적인 담론의 대표 주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내용이 너무 어려웠죠.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길 수도 없었지만 서로 주장하는 것을 읽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 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요. 특히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했을 때 더욱 그렇죠. 이 소설은 주인공이 겪은 7년이라는 세월과 시간에 대한 보이지 않는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길게 쓰고 있어요. 우리에게 7년은 아닐지 몰라도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나만 아는 그런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이 떠오르네요. 2023년의 시작에 글을 쓰고 있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내가 정의하고 인지하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변수 중에서 특별한 변수 하나를 선택해 '시간'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과학을 하고 싶다면 변수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설명하는 이론이 필요하다. p.125
공간과 시간, 주체의 관점을 무시하고 순전히 '외부로부터' 세상을 설명한다면, 수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겠지만 세상의 중요한 어떤 측면들은 간과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p.161
스스로를 주체라고 생각한 경험은 일차적인 경험이 아니다. 수많은 생각들에 기초한 복합적인 문화의 산물이다. 나의 일차적인 경험은 나 자신이 아닌, 내 주위의 세상을 보는 것이다. p.183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중에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여정


 이 책의 마지막 아주 짧은 분량으로 전쟁에 나가 죽음에 이르는 결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왜 마지막을 유독 짧게 죽음으로 서술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결국 죽음과 맞닿은 사람만이 사랑을 알 수 있고 사랑을 알게 되면 어떠한 필요성이나 의지가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독일 가곡 중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에 '보리수나무'를 읊조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죽음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번에 북클럽에서 독일문학책 4권을 읽는데 마지막이 빌헬름 뮐러의 겨울나그네인데 기대됩니다)


 마지막에 전쟁으로 인해 요양원을 강제로 나와야 했던 모습이 독일이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쟁을 일으킨 사실을 더욱 부각하는 모습이기도 했어요.


 제가 들은 것을 정리하려니 이 정도가 한계네요.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차원으로 북클럽 후기를 써봤는데 역시나 아쉬워요. 꾸준히 하게 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써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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