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집을 구한 가장 큰 이유는 산책길 때문이다. 제주도는 관광을 와서는 그 진가를 다 알 수 없다. 노을과 바다와 숲과 바람을 내 삶의 배경인양 무심하고 평화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삶도 그것과 닮아간다. 나도 그랬다. 제주도의 공기가 내 일상이 된 후로 내 호흡이 달라졌고 길어진 호흡으로 책에도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피해왔던 글도 다시 쓰고 싶어 졌다. 그것만으로도 제주 한 달 살이를 끝내고 다시 일 년을 계약할 이유로 충분했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데 집에서 아래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편백나무 숲이 있고, 집 바로 옆엔 요정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산수국 길이 있다.
삼의 오름 산수국 길
< 편백나무 숲 > 남편이 책을 읽는 기적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면 관음사가 있는데 그곳에선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져 추자도가 하늘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신들의 휴식처처럼 느껴진다.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가도 자연을 보며 감탄할 수 있고, 또 자동차로 15분만 이동하면 올리브영과 스타벅스를 누릴 수 있는 시내가 있다는 것. 그게 제주도 일상의 매력이다.
난 날씨가 좋은 날이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숲으로 간다. 목적은 없다. 숲은 뭐든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걸 내게 알려줬다. 그 이야기가 좋아서 숲으로 간다.
<관음사 입구 >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처럼 느껴진다. 난 크리스천이지만 사찰이 주는 고즈넉이 좋아서 자주 간다.
산책의 즐거움은 매일 밤 아로마 오일을 디퓨져에 떨어뜨리고 푹신한 이불속에 파묻히는 즐거움이나 막걸리병을 흔들어 뚜껑을 돌리는 순간의 칙- 소리를 듣는 즐거움과는 다르다.
숲길을 산책할 땐 살아있는 무엇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봄이 오면 죽어있는 듯한 나뭇가지에서 ‘메롱’ 하듯 어린잎이 살아있음을 알리기 시작해 매일매일 모습을 바꿔가며 나를 놀라게 한다. “ 너무 신기하다~"“아, 너무 좋다!”라는 식상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제주도의 온갖 산책길.
자연이 좋아진다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바꿔 말하면 나이가 들어서 좋은 건 자연을 알아보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 아닐까. 자연은 분명 성숙함과 맞닿아 있다. 고요하게 많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며 거대한 우주 속의 태양계, 태양계 속의 지구, 지구 속의 수박씨만 한 제주도, 그 제주도 속에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그런 상상은 나라는 존재를 하찮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온갖 경험과 고민을 허무하게 만들고 내 안의 여러 가지 나를 잠잠하게 해 준다.
<한라생태숲> 숲이 한적하지만 공원 안에 있어서 여자 혼자 걸어도 무섭지 않다.
글을 쓴다면 산책을 하며 시를 외우는 것을 권하고 싶다.
핸드폰 카메라로 시 한 편만 찍어서 출발하면 된다. 걸으며 시를 읽으면 새로운 낱말과 운율의 뉘앙스가 내걸음걸음에 맞춰 나와 함께 리듬을 타는 듯 느껴진다.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내 언어와 결합해 꿈틀 꿈들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바람에 대한 시를 바람에게 읽어주면 혹시 대답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인간이 아닌 모든 것들이 읊어주는 시를 받아 적어 내 이름으로 발표하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 나간 상상도 해 본다.
시를 다 외운 후엔 시인이 어떤 순간 이 시를 썼는지, 말줄임표 속엔 어떤 언어가 숨어 있는지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걸으면서 생각을 하면 생각이 지겨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