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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Mar 09. 2018

아콩카과(3)
까마득한 빙벽 앞에서

- 세계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

빙벽 앞에서  


벽면 앞에 이른 우리는 경악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눈 덮인 설벽면으로 생각했던 곳이 까마득한 높이의 수직 빙벽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진 로프는 200m, 아무리 재 봐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래도 다들 일단 줄을 깔아보자는 의견이어서 오후까지 로프 고정 작업을 마쳤다. 제2캠프로 복귀해 빙벽을 바라보니 턱없이 부족한 200m짜리 로프가 처량했다.  


상황을 베이스캠프로 알리고 자문을 구했다. 단장님이 현지 레이저에게 문의했더니, 올해는 빙질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빙벽을 이용하는 원정팀이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루트 수정이 불가피했다.  

정상 등정을 앞두고. 기회는 오로지 한번 뿐이기에 매순간이 정성이고 최선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포기하고 6,400m 지점에 있는 인데펜덴시아(무인대피소)를 우회, 북면 노멀루트를 공략키로 했다.


시간도 앞당겼다. 바로 오늘 자정 출발이다.  


갑작스런 시간 변경은 나의 의견 때문이다. 사실 나는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이래 계속 이곳의 기상변화를 시간별로 면밀히 관찰했다.


아콩카과의 백풍은 대체로 오전 9시경 불기 시작해 오후부터 강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때문에 다른 원정대가 일반적으로 정상 공략에 나서는 오전 4시는 오후에 강풍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보다 일찍, 자정에 출발해 오전 중 정상을 밟고 하산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시 정상 도전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휴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원래 인펜덴시아까지 고소 순응산행을 다녀오려던 계획도 건너뛰기로 했다. 베이스캠프도 갑작스런 일정변화에 따라 날씨정보를 수집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내일까지 아콩카과 정상은 맑고 바람도 세지 않을 전망이라는 연락이 왔다. 정작 문제는 정상 등정에 나설 나를 비롯한 공격조였다.  


“잠이 오질 않아!”  


어제도 사나운 백풍과 씨름하느라 한숨도 못자고 피곤했기에  걱정이 컸다. 그러는 사이 점점 출발시간이 다가왔다. 지원조의 노력으로 따뜻한 물을 수통에 채우고 누룽지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등반에서 육체의 편함은 없다. 오로지 맘속의 평안을 찾아 내는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저체온증(hypothermia)  


고소순응 절차도 건너뛴, 한밤중에 초행인 등반길이 시작됐다. 우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여기 높이는 얼마나 되지?”  


보이지가 않으니 머릿속에선 항상 이 생각만 맴돌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모복을 파고드는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인데펜덴시아에 도착했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2시간은 기다려야 할 텐데 너무 추웠다. 정말 추웠다.


같이 출발한 대원 2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초조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저체온증에 빠진 것 같았다.


위기임을 직감했다. 이곳은 바람 피할 곳도 없지 않은가. 잠시 후 또 한 대원도 올라왔다. 나와 대원은 저체온증으로 떨고 있는 대원을 가운데 두고 인간 바람막이가 됐다. 아침 해는 언제쯤이나 떠오를지, 시간 가는 게 그렇게 더디게만 느껴졌다.  


가만히 서 있기를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행히 대원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해가 뜨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내가 먼저 길을 찾아 나섰다.  


얼마나 올랐을까, 날이 밝아와 뒤를 돌아보니 두 대원도 능선으로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림이 좋아보였다. 륙색에서 캠코더를 꺼내 이 모습을 담았다. 그런데 깜빡 실수를 하고 말았다. 캠코더를 조작하기 위해 잠깐 장갑(오버미른)을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손가락의 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아차!”  


서둘러 장갑을 다 벗고 옷 속 깊은 곳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다행히 잠시 후 기분 좋은 손끝 감각이 느껴졌다. 정상까지 가져가고 싶은 좋은 느낌이었다.   


현재 고도 6,500m. 수직높이 459m만 오르면 된다고 생각하니 힘이 샘솟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 관문인 급경사의 너덜지대로 진입했다. 바닥에 깔린 돌이 숱하게 많아 한 걸음 올라서면 다시 한 걸음 밀려 내려왔다. 겨우 열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거대한 바위에 짓눌리듯 가슴압박이 밀려왔다. 저 멀리 두 대원도 애써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느려도 계속 올라야했다.


이 큰 산에 우리 3명뿐이다.  

때론 혼지이고 때론 같이 이다. 결국 큰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하고 습관에서 나오는 결정 보다는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는 결정을 따르길 원한다  


드디어 너덜지대를 돌파하고 능선으로 올라섰다.


산 넘어 산이라고, 70도나 됨직한 급경사로 이어진, 게다가 눈까지 쌓인 능선이었다. 정상을 코앞에 둔 이 구간에서 백풍에 밀려 되돌아서는 원정대가 부지기수라고 알려진 바로 그 곳이었다.


시간은 오전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빙,설 혼용 구간으로 아이젠을 착용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바람이 불어 닥쳤지만 발걸음을 밀어내진 못했다. 마음속으로 조금만 참아달라고 애원했다. 강풍이 불기 전에 서두르려고 발버둥치는 몸짓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전 9시 30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정상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머릿속으로 많은 사람들, 많은 생각들이 휙휙 스쳐지나갔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남반구의 지붕에 우리나라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깃발을 꼽았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정상에서 담지 못한 가족과 회사의 사기를 을 캠프2에서  하산 길에 담을수 있었다.


하산  


이제 내려가야 한다. 그동안의 긴 여정을 한 점에 모아놓고 하산 길에 나섰다.


정상에서 떠올랐던 수많은 생각이 내려오는 길에 실타래 풀리듯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며 졸음이 한없이 밀려왔다.  


“졸면 안 되는데….”  


굳은 의지로 버텨보지만 어느새 서서 코를 골고 있는 내 자신에 흠칫 놀랐다. 구르듯 내려왔다는 표현이 알맞을 듯하다. 제2캠프에 도착해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줄달음치듯 내달렸다. 그곳에서 푸짐한 음식과 축하주를 연거푸 먹고 따듯한 침낭으로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등정을 마치고 돌아서는 뒤로 아콩카과 정상에 백풍의 영향으로 버섯구름이 형성됬다.  천운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다.


17일, 오늘은 2차 공격조가 정상정복에 나서는 날이다.


그런데 악화된 기상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제2캠프까지 진출한 공격조가 정상진출을 미루고 베이스캠프로 일단 후퇴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미 등정에 성공한 나는 내일 2차 공격에 나서는 공격조를 위해 수제비와 감자전 특식을 만들어줬다.   


다음날 오전 2차 공격조가 재도전에 나섰다. 그런데 오후부터 강풍이 몰아치는 게 심상치 않다. 무전도 불통이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베이스켐프 역시 다른 원정대의 텐트가 날아가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밤이 되어서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고 무전도 여전히 불통이었다. 급기야 우리 원정대 텐트 1동이 뒤집히고 식당 텐트도 무너지기 직전, 다들 폴을 부여잡고 다음날까지 버텨야했다.   


아침이 되니 공격조와의 무전이 뚫렸다. 간밤 강풍에 제2캠프가 완파돼 1캠프로 내려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2캠프가 사라졌으니 더 이상 정상공격이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


아쉬움에 한참을 침묵하다가 하산 결정이 내려졌다. 성공한 우리 조 대원들은 뭔지 모를 미안함 속에 그들을 맞이했다.


지난번 초오유에서는 내가 저랬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틀에 걸쳐 베이스캠프를 정리하고 멘도사로 내려왔다. 이제 집으로 간다는 마음에 시원섭섭함이 교차했다.  


“다음은 어디인가?”  


나는 벌써 다음 목표를 정하고 있었다.


<끝>


다시 볼수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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